[엄길청 칼럼] 기업평전- SK그룹
[엄길청 칼럼] 기업평전- SK그룹
  • 승인 2019.01.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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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 기업마다 사풍도 있고, 특별한 사훈도 있고, 내려오는 경영철학이 있지만 SK그룹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비교적 분명하게 개념적으로 정리해 놓고 사업을 하는 기업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이끌던 시절에 선경그룹은 SKMS라는 경영관리시스템을 행동규정으로 정해 놓고 이를 모두에게 교육시키고 실제로 일에서 이를 실천하는데 주력했다.

이후 SK그룹을 맡은 최태원 회장은 SUPEX(super excellent) 추구라는 지향가치를 앞세우고 그룹을 이끌어왔다. 실제로 고인이 된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하루에 상당한 시간을 독서하는데 할애하는 독서경영을 실천한 경영자였다. 필자도 잠시 같이 근무한 당시 보좌진들은 최 회장이 읽을 도서목록을 정리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일 정도였다.

더욱이 아버지 최 회장과 아들 최 회장은 공히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다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부자가 이런 길을 걸은 것은 오늘의 SK그룹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생각이 든다. 최종현 회장은 서울대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시카고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최태원 회장은 고려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역시 시카고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오늘날 SK그룹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최종현 회장의 형님인 최종건 회장이다. 1953년 그는 당시 과거에 부장으로 근무했던 선경직물을 당시 화성일대의 부농이던 부친의 지원으로 인수해 오늘의 선경(SK)그룹을 육성한 창업자이다. 그런 최 회장이 1973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별세하자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경영을 맡게 된 것이다. 

당시 형님 때부터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일관사업을 구상해온 선경그룹은 1980년 최종현 회장이 당시 정부기업인 유공(대한석유공사)의 민영화 과정의 인수에 뛰어들어 큰 자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인수에 성공해 오늘의 SK이노베이션을 운영하게 됐다. 이후 최 회장은 역시 국가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에 들어가 인수에 성공하면서 오늘의 SK텔레콤을 만들게 했다. 정유사업이나 이동통신 사업은 미래의 기술진화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가 없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유업에서 오래 사업을 한 현대와 쌍용, 한화는 결국 여러 사정으로 물러선 바 있고, 이동통신사업도 포스코, 한솔, 코오롱 등 많은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엄청난 수업료만 내고 역시 물러섰다.

당시 이 두 회사의 인수로 선경그룹은 이미 섬유산업의 사양화로 대기업으로 잘 성장하다 그룹이 위기에 몰리거나 해체된 삼화, 태화, 대농, 고려합섬, 한일합섬, 새한, 갑을, 동국무역 등과는 달리 10대 그룹으로 다시 올라서는 강력한 도약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아들 최 회장은 또 곡절 많고 사연 많은 반도체 기업인 하이닉스(현대전자) 인수에 역시 무리한 자금부담을 안고 뛰어들어 오늘의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배운 물리학의 기반이 중요한 반도체의 미래 기술가치의 진보와 이해에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정말 그의 선택은 신의 한수였고, 벼랑 끝에서의 배수의 진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반도체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다이나믹하겠지만 당시 최 회장의 승부수는 한국 기업사의 진검승부로 남을만한 일이다.

사실 아버지의 한국이동통신 인수나 아들의 하이닉스 인수도 이후의 경영과정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 기술이 급변하는 복마전(hotbed) 같은 곳이어서 당시의 그룹 크기로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들 부자는 보란 듯이 해낸 것이다.  

그런 최 태원 회장이 2018년 연말에 범 가문의 가족들에게 그룹 지주사인 SK지분을 나눠줬다. 4촌 형제들과 조카들에게 대략 1조원이 좀 못되는 가치의 지분을 고루 증여한 것이다. 자기 지분의 5% 정도의 가치가 담긴 주식을 사촌형제인 최신원, 최창원, 그리고 고인이 된 4촌형인 최윤원의 자녀 등에게 흔쾌히 나눠줬다.

이 일로 자신의 전체 그룹경영 지분이 20% 이하로 내려오는 일인데도 그는 이런 일을 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동안 그룹을 키우면서 집안 형제들의 지지와 도움을 컸는데, 최 회장은 언젠가 그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다고 했다. 당초 큰 아버지가 세운 회사를 자기 부친이 크게 키웠지만, 늘 자기 가족을 믿고 따라준 4촌 형제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대기업 역사에서 보기드믄 훈훈한 장면이고, 또 늘 가족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얼룩진 우리 대기업 가문에서는 참 신선한 일이다.

2019년 새해 들어서는 최 회장이 그룹경영 신년사에서 경영성과의 절반을 사회적 공헌가치로 삼아달라는 신선한 공익경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동안도 간간히 사회적 경영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경영성과의 척도로 삼겠다는 언급은 우리나라 기업경영 사회에 그 시사되는 바가 크다.

이후 최 회장은 젊은 임직원들과 토크이벤트를 하는 일에 참여하며 일과 행복의 조화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강조하는 남다른 행보도 보이고 있다.

사실 그는 얼마 전에 상당한 개인적 과오를 남긴 사람이다. 무속인 출신의 어느 투자관련 직원을 그룹으로 들여와 그의 말을 듣고 외환투자, 선물투자 등에 자신의 돈 6000억원을 사기 당하고, 회사 돈을 400여 억원을 날린 혐의로 법정의 심판을 받아 상당기간 영어의 신세가 된 적이 있다. 대기업 총수로서, 또 젊은 지식경영자로서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인지만, 본인도 후일 당시 자신이 무언가에 홀린 것 같다고 깊은 후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2015년 다시 경영현장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2012년 그가 인수해 놓은 SK하이닉스 앞에 전개된 공전(unheard)의 글로벌 반도체시장의 대호황이었다. 이 반도체 호황이 생각보다 장기화되면서 그와 그 기업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이를 통해 그는 자신감을 되찾고 그간의 시름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기업과 기업인 앞에는 늘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에 SK가 새로운 난관을 만나면 최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대강 짐작이 된다.  
 
대략 기업들은 위기가 닥치면 두 가지의 다른 행보를 보인다. 하나는 이전의 기업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한 부채전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과감히 슬림화 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대우그룹이 전자라면, 효성그룹은 후자다.

SK그룹사의 경영현황을 살펴보면 그들은 후자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그룹의 상장기업을 토대로 살펴보면 이들의 경영실태가 참 많이 구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SK하이닉스나 SK텔레콤이나 SK이노베이션은 아주 회사도 크지만 자본과 부채구조가 매우 양호하다. 그러나 SK케미칼, SK머트리얼즈 등은 그냥 그런 수준의 기업들이다. 이 중에서 일부 기업은 회사도 그리 크지 않고, 부채가 많은데도 그냥 그대로 둔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지 않는 계열사는 굳이 돕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SK증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외부로 매각이 됐다.

따라서 장차 그룹의 주력기업이라도 구조적으로 어려우면 최 회장이 미련을 두지 않고 파격적인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고 또 기회가 주어지면 또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면 다시 인수전에 참여하고 변신을 시도하는 과감한 결단이 예상이 된다.최 회장은 전략적 승부사의 기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SK그룹의 미래는 상황에 따라 그 방향성과 변동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계열기업을 투자포트폴리오처럼 수정하고 결단하는데 용단을 내릴 경영자라고 보인다. 최 회장은 그게 만일 먼 훗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통합이라 할지라도 때가 왔다고 판단하면 승부수를 띄울 사람으로 보인다. 이는 부진한 실적의 SK계열사라면 그룹위상이 그 기업 주가의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소리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 지주사의 투자기업의 입장에서 냉정히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룹 경영전략이 말하는 SUPEX추구, 가장 '최상을 쫒는다' 것은 바로 이런 경영을 의미할 것이다. 글로벌경영 트렌드에서 볼 때 세계적인 M&A가 예상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최 회장의 결단과 변신이 주목된다.
 
[엄길청, 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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