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은 찻잔 속 태풍이었나
[기자들의 팩자타]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은 찻잔 속 태풍이었나
  • 전지현
  • 승인 2018.07.24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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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2세대 내건 궐련형전자담배 '불꽃경쟁' 시작

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장기적인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연구 결과를 포함한 최근 연구 결과는 글로가 일반담배 제품에 비해 잠재적 유해성이 저감된 대안제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제임스 머피 BAT그룹 유해성 감소 연구개발(R&D) 총괄(박사)는 지난 23일 '글로 시리즈2' 출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최근 한달새 외국계담배제조기업들은 한국 정부의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발표가 무색하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지난 6월 초,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발표를 했습니다. 지난 1년간 흡연가들이 기다렸던 발표였기에 업계 관계자를 비롯한 언론의 관심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했었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한달여 앞둔 시점부터 '내달 나온다', '내일 나온다' 기사를 쏟아내며 식약처 연구 결과 발표 이후 벌어질 상황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죠.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식약처 발표 직후 글로의 BAT와 아이코스의 필립모리스는 즉각 반발에 나섰고, 이후엔 궐련형전자담배가 '유해하다', '아니다'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한달. 이제는 BAT와 필립모리스는 한국 정부가 발표한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발표를 오히려 응용하거나 추가하는 방식으로 '덜 유해함', '대안제품'을 강조하는 중입니다. 흡연을 계속하려는 흡연자들에겐 궐련형전자담배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공신력 있는 한국 정부기관의 발표를 허점투성이(?)로 만드는 모습이라 살짝 불쾌함마저 듭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무시할 순 없다는 게 관련업계와 많은 흡연자들의 분위기인 것도 사실입니다. 잠시, 전날 머피 박사가 국내외 규제당국에서 궐련형전자담배에 대해 발표한 내용을 설명했는데, 그 대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궐련형전자담배로 전환시 흡연자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요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소할 가능성이 큽니다."-영국 독성위원회
 
"비록 궐련형 전자담배의 니코틴을 제외한 건조 입자상 물질 함유량이 담배 타르 수치와 비교될수 있지만, 단순 비교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주요 발암물질 수치는 일반담배에 비해 궐련형전자담배 배출물에서 현저히 감소했습니다."-독일 연방위해평가원
 
"궐련형 전자담배의 사용이 건강에 해롭기는 하지만, 일반담배를 피우는 것보다는 덜 해로울 것입니다."-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소
 
"특히 궐련형 전자담배 2개 제품의 경우 타르 함유량이 일반 담배보다 높게 검출됐다는 것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와 다른 유해 물질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영국, 독일, 네덜란드, 한국 4개 규제당국은 궐련형전자담배도 담배인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데 공통된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 3개국은 일반담배보다 '덜 해로움'을 이야기한 반면, 한국에서는 타르 함유량을 토대로 다른 유해물질 포함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주요사항으로 다루고 있죠.
 
담배제조기업들 역시 궐련형전자담배가 무해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식약처가 WHO 저감화 권고 9가지 유해성분을 기준해 발표한 자료에서 타르 수치만을 강조했는데, 생성방식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 문제란 지적이죠.
 

 

왜일까요.
 
궐련형 전자담배는 '찌는 담배'로 불립니다. 궐련처럼 생긴 담배스틱을 충전식 전용기계(디바이스)에 꽂아 고열로 쪄서 증기를 내 피우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태우는 담배(일반 담배)'와 '찌는 담배(궐련형 전자담배)' 방식 차이로 인해, 궐련형전자담배는 근본적으로 연기와 다른 증기를 생성, 발생되는 구성성분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담배제조기업들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담배제조기업들은 "담배를 태워 니코틴과 수분을 뺀 나머지 잔여물 성분인 타르가 연소시 발생하는 유해물질(니코틴 제외)을 총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타르의 총량을 단순 비교하기 보단 배출물 구성성분을 봐야한다는 논리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만약 식약처 조사결과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WHO 저감화 권고 9가지 유해성분을 제외한 추가 유해물질이 발견됐고 이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라고 발표했다면 어땠을까요. 외국계 담배기업들이 지금처럼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없었을 것이란 데 아쉬움이 남기만 합니다.
 
더 나아가 외국계 담배기업들은 반박할 수 없는 구체적인 자체분석결과로, 그간 믿었던 한국 정부기관을 향한 소비자신뢰마저 떨어뜨리는 분위기입니다.
 

BAT 머피 박사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해 126가지 유해물질을 자체적으로 평가한 결과 일반담배보다 화학물질을 덜 형성했고, 한 가지 연구만한 게 아닌 독성학이나 노출연구 등 다양한 유해성 연구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달여 앞서 필립모리스가 들고나온 자체 연구결과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필립모리스는 지난 6월 일반담배에서 초미세먼지가 5000억개 나올 때 아이코스에선 배출되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타르의 양이 아니라 구성 성분 비교가 중요하다고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저타르와 고타르 일반담배 비교를 통해 타르와 유해성분 생성량이 연관 없다고 지적해 앞선 식약처 발표를 멋쩍게 만들었죠.
 
궐련형 전자담배는 지난해 하반기 7700만갑이 판매돼 전체 담배 시장에서 점유율 4.2%를 기록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1억5600만갑으로 9.3%까지 치솟았습니다.
 
식약처 발표가 있었던 지난 6월에는 유해성 분석 결과 영향인듯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지난 5월 3억400만갑에서 6월에 2억8600만갑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6월 판매량은 여전히 ▲1월 2억3100만갑 ▲2월 2억2100만갑 ▲3월 2억3600만갑 ▲4월 2억8100만갑 보다 높습니다.
 
공신력있는 정부의 약빨(?)은 한달 뿐일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습니다.
 
식약처의 궐련형전자담배 유해성 발표에도 담배제조생산 기업들의 2세대 신제품 출시로 '정면돌파'에 나섰기 때문인데요. 시장 2위인 KT&G가 지난 5월 시즌2 제품 '릴 플러스'를 내놓은 데 이어, 6월에는 BAT가 글로'의 업그레이드 버전 ‘글로 시리즈 2’을 공개했습니다. 필립모리스는 기존 아이코스의 단점으로 지목된 '연사 기능'을 추가한 '아이코스 멀티'를 연내 선보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느덧 1년. 지난해 6월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 판매를 시작한 이후 1년새 궐련형전자담배는 담배시장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습니다. 올해 들어선 히팅 기기와 스틱들이 2세대 모델로 전환되면서 1년 주기 교체수요 선점 '2라운드 불꽃 경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죠.
 
반면 정부는 식약처 발표를 토대로 하반기 궐련형전자담배 담배갑에도 경고그림과 문구를 삽입키로 결정했습니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서도 일반담배와 마찬가지로 발암물질이 나왔고 타르는 일반담배보다 더 많이 검출됐기 때문에 일반담배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시작한 것인데요.
 
이 추세대로라면 궐련형전자담배 세율을 일반담배 수준으로 올려, 담배제조기업들의 가격인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담배기업들은 그들의 논리대로 일방통행을 지속하는 사이, 흡연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금연'밖에 없는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