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포토라인에 선 한진 총수일가…'무죄 추정 원칙'이 사라지는 순간
[기자들의 팩자타] 포토라인에 선 한진 총수일가…'무죄 추정 원칙'이 사라지는 순간
  • 강필성
  • 승인 2018.05.28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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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바라보는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포토라인. 사진적 의미는 언론의 취재 편의를 위해 접근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진 촬영지역을 일컫습니다. 이는 취재원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취재 환경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형사사건에서 이 포토라인이 만들어질 경우에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포토라인의 첫 인상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손목의 수갑을 헝겊으로 가리고 마스크나 후드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중범죄가 연상되죠. 이때 포토라인은 범죄자를 국민에게 공개한다는 의미가 큽니다.

 

주목할 점은 이 순간, 사라지는 하나의 가치입니다. 헌법에서 보장된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 포토라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형사사건의 포토라인은 늘 정치적이었고 같은 이유로 중범죄자를 대상으로 신중하게 만들어집니다. 

 

최근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한 포토라인은 이런 대목에서 여러 논란을 낳습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28일 경찰에 소환되면서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그는 대한항공에 직함을 갖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에 불과합니다. 앞서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24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에 소환되면서 포토라인에 섰죠. 서울출입국 소환 과정에 포토라인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울러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지난 1일 경찰에 소환되며 포토라인에 선 바 있습니다. 이쯤 되면 조 회장의 부인과 두 딸이 모두 포토라인에 서게 된 셈입니다. 

 

 

이들 세 모녀는 취재진의 질문에 하나같이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들의 속내에는 일부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대한항공이 하루가 멀다하게 의혹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포토라인에서는 그런 반론이나 억울함을 성토하기 어렵습니다.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그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탓입니다. 그래서 포토라인에서는 대부분 유무죄와 무관하게 ‘죄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총수일가의 각종 논란과 의혹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죄는 포토라인이 아니라 재판정에서 판결을 통해서 내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징역이나 벌금 등으로 마땅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이 과정이 없는 모든 사람은 무죄 추정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죄형법정주의고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법조계에서조차, 최근 잇따른 한진 총수일가의 포토라인이 ‘망신주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합니다. 여론에 떠밀려 현행법에서 정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포토라인이 잇달아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실제 이들이 과연 포토라인에 서야 했을 정도의 중범죄자인가는 질문에는 이견이 적지 않습니다. 회사의 돈을 횡령하거나 빼돌린 것도,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닙니다. 같은 혐의로 포토라인이 만들어진다면 수사기관의 앞에는 10분마다 포토라인이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단지 유명하고 재벌가라는 이유로, 사회적 논란이라는 이유로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이들은 논란의 대상일지언정 현재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자연인입니다. 올바른 수사기관이라면 이들을 포토라인에 세워 ‘죄송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유죄를 입증할 증언과 증거를 모아야 했습니다.

 

빈말로라도 한진그룹 세 모녀가 도덕적이었다고 하기는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유하게 된 배경이 된 이유를 돌이켜 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것이 한진그룹 일가를 향한 또 하나의 ‘갑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