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3년 지난 삼성물산에 무얼 노리나…엘리엇, ISD 제기 속내
합병 3년 지난 삼성물산에 무얼 노리나…엘리엇, ISD 제기 속내
  • 이연춘
  • 승인 2018.05.0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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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합병 적절성 논란이 뜨겁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가소송제도(ISD)를 제기하면서 속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선 엘리엇의 ISD 추진이 최근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강화 문제를 두고 맞선 현대차그룹과정부 압박을 염두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라’며 현대차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이런저런 기업의 일에 정부가 함부로 개입했다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고했다는 것. 엘리엇 입장에선 밑져야 본전 격으로 삼성과 현대차를 동시에 노린 것이라는 얘기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추진하고 있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국제소송이다.
 


엘리엇은 2015년 두 회사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찬성에 정부가 부당하게 간섭해 투자 손실을 봤다고 주장한다. 엘리엇은 이를 위해 ISD 제소 전 단계인 '중재의향서'를 지난 4월 중순 국가 소송 담당 부처인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결국 엘리엇이 ISD에 나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검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의 합병을 돕기 위해 국민연금을 상대로 직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국민연금에 약 1387억원의 손해를 초래(업무상 배임죄)했다며 마찬가지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경제계에선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등 기업들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 소송의 실질적 타깃은 삼성이 아닌 현대차로 보는 이유다.

엘리엇은 지난달 23일 '현대 가속화 제안'을 발표하며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에 반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고 이익의 50%를 배당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 지분 1조원대를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이 우리 정부에는 '현대차와의 갈등 국면에서 중립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시장에는 '현대차가 여차하면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부각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한다.

반면 직접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삼성물산 합병이 또다시 논란이 되자 삼성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불거졌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적절성 논란이 재차 등장한 데 대해서는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엘리엇이 정식 ISD 절차를 밟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서 우리 정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경우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어서다. 특히 삼성은 엘리엇이 추진하는 국제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계 역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 추진에 민간 기업 간 문제가 글로벌 국가 분쟁으로 확산됐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이 3년이 지난 시점에 엘리엇이 다시 국제 소송건을 들고 나온 것은 삼성의 약점을 파고들고 더불어 현대차를 압박하는 카드로 보인다"며 "ISD 카드가 향후 현대차그룹과 엘리엇 간 분쟁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한할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