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의 그늘③] 선·후배=가족? NO!…"직장이 맺어준 계약관계"
[폭로의 그늘③] 선·후배=가족? NO!…"직장이 맺어준 계약관계"
  • 전지현
  • 승인 2018.04.20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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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에 기댄 온라인 물결...다양한 소통창구에 고충토로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2017년 10월19일. '제발 도와주세요. 입사 3일만에 신입사원 성폭행, 화장실 몰래카메라...'라는 제목의 글이 익명 커뮤니티앱에 게재했다. 한샘 직원의 글이다. 글을 올린 A씨는 회식후 귀가길에 직장상사에 성폭행을 당했고 이를 회사에 알렸지만 2차 성폭행이 추가될뻔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2018년 4월5일. 같은 익명 커뮤니티앱에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아모레퍼시픽 계열 이니스프리에서 남성 직원이 수차례 성희롱·성추행을 일삼았지만 담당자는 보직 발령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솜방망이 징계에 추가 피해자들이 폭로에 나서면서 사건은 외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직장내 폐단과 고충이 익명 게시판을 통해 번지고 있다. 다양한 직장 이외의 소통창구가 생기면서 적극적으로 고충을 공론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많은 직장인들은 '비공감'과 '공감'이란 두 기준으로 사안을 바라본다. 사라진 평생직장 개념 속에서 '선후배=계약관계'란 인식은 더욱 심화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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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과 이니스프리 CI. <사진=각사>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여러 익명성 고충토로를 바라보는 직장인들의 '비공감'과 '공감'의 두 기준은 직장내 위치차이가 서로의 간극을 넓힌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간부인 B상무(50·남)는 "'예쁘다'는 말이 과거엔 칭찬이라 여겼는데, 이제 성희롱이라 하더라. 그동안 생각하지 못하고 농담으로 던졌던 말들을 곱씹게 됐다"면서도 "과거 직장내 선후배 관계는 '제2의 가족'이란 인식이 강했다. 서로 문제가 있으면 술한잔 마시며 풀고 고민도 나누곤 했는데 요즘 세대는 온라인을 먼저 찾는 듯하다"며 씁쓸해 했다.
 
공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 C씨(30·여)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며 "온라인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해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게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한 것 아니냐. 대부분 '나의 말'이 묵살되는 회사 문화를 감안하면 회사 상사나 고충센터에 말하는 것 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C씨의 말처럼 한샘 성폭행 사건은 사건의 법적처리와는 별개로 근본적인 한샘의 기업문화가 바뀌는 사례로 작용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폭로가 아니었다면 바뀔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 사건은 한샘의 사내 문제를 넘어섰다. 당시 청와대 게시판에는 '한샘 성폭행 사건에 대해 올바른 수사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에 4일만에 3만명 넘는 사람이 동참하기도 했다.
 
한샘은 사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조직문화 쇄신작업에 들어갔다. 기업문화팀을 회장 직속 기업문화실로 승격하고 임직원 의견을 수렴하는가 하면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무기명 핫라인도 운영키로 했다. 외부전문가들로 기업문화 자문단을 구성해 기업문화 전반에 관련한 자문도 구하기로 했다.
 
가구업계 한 관계자는 "한샘은 서열을 중시하는 군대식 문화가 심하고 보수적인 기업으로 유명했다"면서도 "이번 사태로 대표까지 나서 근본적인 조직 문화 변화를 추진하는 모습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의 경우는 한샘의 상황과는 다르다. 회사가 고충신고센터와 전단팀까지 꾸려가며 면대면 상담, 사내교육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고충해결에 나서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 역시 피해자와의 심층면대면을 통해 사건이 인지됐고, 가해자 징계로까지 진행됐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가해자는 보직 발령 이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현재 해당사건이 블라인드에 올라온 사실과 다른 것이 많아 재조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블라인드에는 익명이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비판이 많이 올라오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사건과는 별개로 사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고충까지 온라인을 통해 터져나오면서 기업 경영에는 혼란이 커지는 부작용도 있다. '세대차이'를 꼬집는 시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익명성에 대한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볼 문제다. 한 대기업 인사부장 D씨는 “신입사원급의 젊은 세대들은 자기 의사를 명확히하려는 성향이 있다"며 "온라인이란 공간이 익명성이 강하다는 점에 기대 명예훼손 및 허위 신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경계했다.
 
실제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 E씨(29·남)는 "상사에게 대놓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참지 않고 의사를 밝히는 문화에 익숙하다"며 "친구들과 술을 먹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나 억울함이 발생했던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페이스북에 암시적 멘트를 달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달라진 세대별 인식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온라인에 기대어 공감을 얻고 싶을만큼 고충이었는데, 세대간 언어와 행동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로 깊이 알지 못한 것도 '유죄(?)'라는 말도 나온다.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E차장(41·남)은 "같은 부서에서 6년이상 일했고, 평소 고민도 공유했던 여자 후배에게 머리를 쓰담는 행동을 하곤 했다"며 "최근에 당사자에게 물으니 격려차원에서 어깨를 두드리거나 내몸에 손을 대는 것이 싫다고 말해 깜짝 놀랬다"고 했다. 그는 이어 "관계라는 것이 자로 잰듯 각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제 후배는 직장에서 맺어준 계약관계 그 이상을 바라면 안된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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