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영풍 창업가문 장씨·최씨 후손들 헤어질 결심? ..."고려아연 주총표대결 관건"
[이슈+] 영풍 창업가문 장씨·최씨 후손들 헤어질 결심? ..."고려아연 주총표대결 관건"
  • 정유현 기자
  • 승인 2024.03.04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왼쪽) 장형진 영풍 고문, (오른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 사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에서 출발해 75년간 '한 지붕 두 가문' 경영을 해온 영풍그룹에서 경영권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오는 19일 열릴 고려아연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배당금 축소 및 정관 개정 안건에 대해 장 씨 가문과 최 씨 가문이 표대결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두 가문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두고 지분 경쟁도 이어가고 있다. 

■ 75년간의 동업관계 막 내리나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에서 매출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이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영풍기업사를 모태로 하는 영풍그룹은 1970년 아연 제련소인 영풍 석포제련소를, 1974년 자매회사인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각각 석포제련소와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며 아연 생산 세계 1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1990년 상장돼 지난해 기준 9조7천억 수준의 연간 매출을 기록하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장 씨 가문은 영풍 석포제련소와 전자 계열사를, 최 씨 가문은 고려아연과 기타 비철금속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두 가문은 분리 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상대 가문의 계열사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평화로운 '동업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 씨 가문의 3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취임한 후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업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2차전지 소재‧리사이클링 등 신사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영풍과 입장 차이가 있으며, 고려아연이 영풍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다만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경영에 이유없이 간섭하려는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 정관 변경·배당액 축소안 둘러싸고 충돌

발단이 된 것은 고려아연의 이사회가 내놓은 결의안이다. 고려아연은 이달 19일 열릴 주총 안건으로 보통주 한 주당 5천원의 결산 배당안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시 '외국 합작법인'뿐 아니라 국내 법인에게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안 등을 제안했다. 

정관 변경안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대한민국 및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경영 추진이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풍 측은 최 씨 가문이 경영권 방어·유지라는 사적 편익을 위해 정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현행 정관은 ‘경영상 필요 시 외국의 합작법인’에게만 제3자 신주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 측의 주장대로 해당 조항이 삭제될 경우 제한 없이 제3자 배정 유증이 이뤄져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되고 지배권이 약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영풍 측은 "동업 관계인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진이 합의 하에 만든 정관을 한 쪽이 일방적으로 개정하려 하는 것은 비즈니스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약속과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풍은 이어 해당 정관 조항이 유효하던 때에도 고려아연이 국내 기업의 해외 계열사 등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증하거나 자사주 맞교환 방식 등으로 총 16% 상당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킨 전례가 있음을 지적했다.

영풍 본사ㅣ영풍 제공

고려아연이 내놓은 배당안에 대해서도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제시하는 2023년 배당액은 중간배당과 결산 배당금을 합치면 보통주 한 주당 1만5천원 수준이다. 이는 전년도(2만원)보다 줄어든 액수다. 이에 영풍은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배당이 이뤄지도록 결산 배당으로 1주당 1만원을 배당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배당안에 대해 고려아연은 높은 주주환원율을 근거로 제시했다. 고려아연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1,000억 원의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 환원율은 76.3%로 전기(50.9%)에 비해 훨씬 높아진 상황이고, 환원액은 2022년 3,979억 원에서 2023년 4,027억 원으로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영풍 측의 주장대로 배당금을 높인다면 96%에 육박하는 주주환원율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경영실적 악화 요인에 더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으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할 주식 수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당성향의 분모가 되는 당기순이익이 무려 3분의 1가량 폭락하면서 마치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처럼 착시 효과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한 고려아연이 지난 2022년부터 한화, LG화학, 현대차 그룹 계열사 등에 제3자 배정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을 하면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할 주식 수가 약 16% 이상 늘어난 것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입장을 다시 반박하며 "기업이 모든 이익금을 투자나 기업 환경 개선에 할애하지 않고 주주환원에 쓰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주주 권익을 떨어뜨린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만성적인 적자구조에 놓여 있으며 주주환원율이 5%에 못미치는 영풍이 고려아연의 실적을 지적하며 높은 주주환원율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 지분율 박빙... 19일 주총 표대결에 관심

양측은 배당안과 정관 변경안뿐 아니라 고려아연의 향후 경영권에 있어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지분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두 가문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0% 초반으로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고려아연 지분 0.1% 미만을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KCGI자산운용은 고려아연의 주총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할 예정이며 영풍 측에 설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최 씨 가문은 현대차그룹과 협업 관계를 맺으며 우호 지분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해외법인인 HMG글로벌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 5%를 인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양측의 지분율이 박빙인 만큼, 오는 19일 주총에서의 표 대결은 기관 및 일반 투자자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분 8% 정도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즈트리뷴=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