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규제 논란①] '제2의 네이버·카카오' 봉쇄하나
[플랫폼 규제 논란①] '제2의 네이버·카카오' 봉쇄하나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3.12.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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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카오·배민·쿠팡 사라질 것" 한 목소리

국내 IT업계가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 온플법)의 도입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국내 IT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거란 우려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플랫폼법 제정안을 마련해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소수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해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입점 업체 등 이용자가 다른 경쟁사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태) 등 반칙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정 대상은 △시장점유율 △매출액 △이용자 수 등 정량 요건 및 시장 내 영향력 등을 고려할 계획이다.

■네이버·카카오 저격 법?...IT업계 "국가적 손실" 난색

업계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그간 카카오T의 배차 알고리즘 조작, 가맹 택시 우대 등을 독과점 플랫폼의 부당한 사례로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IT 및 벤처캐피탈 업계는 대외 환경 악화와 스타트업 투자 감소로 인해 신생 유니콘 육성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7조68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투자 건수도 작년 5857건에서 올해 5072건으로 줄었고, 기업당 평균 투자액도 32억2000만원에서 25억9000만원으로 6억3000만원 쪼그라들었다. 유니콘 인증 기업들(22곳)은 경기 부진과 경쟁 심화 등으로 불과 몇 년 만에 기업가치가 크게 줄었다.

ㅣ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링크드인 갈무리
ㅣ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링크드인 갈무리

IT업계는 법안이 통과되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타격이 될 거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해 유니콘으로 성장시킨 주요 투자자들 사이에서 반대 목소리가 크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자신의 링크드인을 통해 "현재 추진되는 플랫폼경쟁촉진법이 그대로 도입되면 IT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오히려 외국 플랫폼 기업에게 반사이익을 얻게 해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0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당근마켓, 하이퍼커넥트, 네이버제트 등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며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는 데 기여한 주요 벤처캐피탈 회사다. 벤처투자 정보 업체 더브이씨에 의하면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116개 스타트업에 총 556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여기에는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들도 여럿 포함된다.

이 대표는 "우리는 더 이상 혁신적인 스타트업인 네이버나 배달의 민족, 쿠팡 같은 기업을 한국에서 목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스타트업에서 출발, 글로벌로 진출해 성장하는 네이버와 배민, 쿠팡 등 국내 테크 기업만 대상으로 무작정 고민이 덜 된 규제를 하면 누가 큰 그림을 보고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냐"고 일갈했다.

■재계·유관단체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

주요 재계 및 IT 유관 단체들도 플랫폼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은 의견서를 내고 "합리적 소비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섣부른 사전규제는 소비자 물가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섣부른 사전규제는 불필요한 물가 상승만 초래할 뿐,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과 동반성장하고 있는 영세사업자, 청년사업자들의 판로를 잃게 하고, 소비자 후생의 막대한 후퇴로 나타날 것"이라며 "이중 규제로 인한 과잉제재와 시장위축, 행정낭비 등 부작용은 조만간 기업과 국민 모두가 떠안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디지털광고협회, 한국온라인쇼핑협회, 벤처기업협회 등이 소속된 디지털경제연합(디경연)도 법 도입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디경연은 성명서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미 해외 주요국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각국의 상황에 맞춰 각기 다른 정책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 도입은 국내기업과 미국기업만을 대상으로 불균형적으로 겨냥해 '유럽식 규제를 한국에서 복사 붙여넣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