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90년대 금융위기 데자뷔
루블화, 90년대 금융위기 데자뷔
  • 승인 2014.12.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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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되풀이 될 것인가
유가 급락과 서방의 경제제재에 따른 러시아 경제 불안이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과같은 사태 재연과 이머징 금융시장 전체로 위기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루블화는 물론 주요 이머징 통화의 약세 폭이 확대되면서 JP Morgan 이머징 통화지수가 2000년 통계치 발표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하락하였다. 이머징 금융시장내 리스크를 반영하고 있는 시그널이다.
 
특히, 현재 글로벌 경제 상황은 90년대 후반 러시아 모라토리움은 물론 아시아 금융위기 발생 당시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시장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첫번째 유사점은 미국 경제 회복과 이에 따른 통화정책 및 달러 기조 변화를 들 수 있다. 당사가 달러화의 구조적 강세를 설명하면서 누차 강조한 바와 같이 현재 미국 통화정책기조는 90년대 중반과 같이 긴축기조로의 선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로 인해 90년 중후반과 같이 달러화는 구조적 강세국면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두번째, 미국과 Non-US간 경기 차별화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 중후반과 비슷하게 유로 및 일본 경제가 부진한 동시에 이머징 경제 역시 성장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세번째 유가로 대변되는 원자재 시장이 급락하고 있음도 유사하다. 이 처럼 글로벌 환경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현 러시아 경제 및 정치 상황은 과거 90년대 중후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견조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차별성도 있다. 그러나 서방 경제 제재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러시아 경제가 재차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 천연가스ㆍ석유 등 보유한 천연자원의 가격상승으로 일시적 호황을 맞았던 국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 경기침체를 맞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에 다시 감염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러시아 상황만을 가지고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러시아 경제가 유가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현재 러시아 경제 상황은 98년 모라토리움 당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경상수지, 재정수지 및 외환보유액 모두 98년당시에 비해서는 건전한 편이며 대외채무 부담 역시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다.

최근 급격히 인상된 정책금리 수준 역시 과거 98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현 러시아 경제지표만으로 러시아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고 속단 내리기도 어렵다. 우선,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 경제 펀더멘탈
은 급격히 악화될 수 밖에 없다. 러시아 재무부가 밝히고 있듯이 유가가 장기간 60달러를 하회할 경우 내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4.5%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09년 러시아 성장률 -7.8% 수준을 밑도는 수준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달리 저유가 기조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러시아 경제의 회복을 쉽게 얘기할 수 없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도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경제 펀더멘탈을 악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 경제가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책금리는 17% 수준을 보이고 있어 내수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또한, 유가 하락으로 흑자를 유지하던 재정 및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역시 러시아 경제 펀더멘탈 악화 요인이다. 특히 금융시장 불안으로 외국인 자금이 추가 이탈할 경우 러시아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11월말 현재 러시아 외환보유액은 4,189억달러로 우크라이나 사태, 유가 하락 및 외환시장 개입 등의 영향으로 1년만에 약 970억달러가 감소하였다.
 
따라서 현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가 유동성 위기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경제연구원 추정에 따르면 사태 악화시 15년 러시아가 필요한 외환유동성은 약 4,432억달러로 현 외환보유액을 상회하고 있다. 따라서 서방 제재 지속과 유가 추가 하락시 내년들어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은 아니지만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걱정되는 것은 러시아가 아닌 이머징 금융불안 확산 리스크
금융시장이 러시아 사태를 우려하는 배경에는 러시아 경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파급력보다는 러시아 불안에서 비롯될 수 있는 전염효과이다. 러시아 경제의 불안에 따른 전염효과에 가장 크게 노출된 것은 아무래도 유로 등 유럽경제일 것이다. 대러시아 수출 부진에 따른 실물경제 악화와 더불어 유가 하락에 따른 각종 원자재 관련 프로젝트의 취소와 지연은 당연히 유럽권 금융기관에 악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
 
최근 FT보도에 따르면 1조달러 규모의 원유 개발사업이 큰 타격을 받을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밖에도 러시아 경제 상황 악화에 유럽권 금융기관들이 러시아에 빌려준 대출 역시 부실에 노출될 수 있음은 가뜩이나 힘든 유럽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이 미국 등 서방권의 압박에 타협하지 않고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공급을 무기로 전면전에 나설 경우 유럽 경기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질 확률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혹은 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ECB가 내년초 실시할 양적완화 정책효과를 반감시키는 부작용도 초래할 수도 있다.
 
러시아 경제불안의 또 다른 전염효과는 위험자산 투자 회피, 즉 글로벌 자금의 脫이머징 현상 심화이다. 러시아 경제불안 확산시 일부 산유국은 물론 펀더멘탈이 취약한 이머징 국가의 연쇄적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연준이 내년들면서 정책금리 인상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미국 양적완화로 풀려나간 막대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 자금들이 급격히 이머징 혹은 위험자산에서 이탈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하이일드(high yield) 채권가격이 급락중이며 이머징 금융시장 역시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요약하면 유가 급락과 이에 따른 러시아 금융불안은 과거 90년 중후반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러시아 등 이머징 경제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펀더멘탈이 양호한 점 역시 사실이다. 따라서 90년대 후반과 같은 이머징 금융불안 확산 가능성은 아직은 낮아 보인다. 다만, 달러 강세, 미국 정책금리 인상과 이머징 펀더멘탈 약화라는 조합이 더욱더 가시화되고 있어 이머징 금융시장의 잠재적 금융불안 리스크가 커지는 동시에 상당기간 변동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