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스코 서울 직원까지 이전해야?… 글로벌 포스코 '핌피'로 멍든다
[이슈+] 포스코 서울 직원까지 이전해야?… 글로벌 포스코 '핌피'로 멍든다
  • 정유현 기자
  • 승인 2023.06.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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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최정우 퇴출! 포스코 지주사 본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실질적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KBS 방송 화면 캡처
지난 15일 '최정우 퇴출! 포스코 지주사 본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실질적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KBS 방송 화면 캡처

최근 경북 포항시 일부 시민단체가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 문제를 쟁점화하며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개최한 이후 지역사회 전체가 시끌하다. 포항 지역 지자체와 시민단체, 기업 간 이견 폭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연일 갈등과 대립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지역 시민단체에 대해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성토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포항 현지 단체들의 과도한 '핌피(PIMFY)' 현상이 글로벌 포스코의 경쟁력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핌피(PIMFY)' 는  'Please In My Frontyard, 제발 내 앞마당에 해주세요'라는 뜻으로 수익성 있는 사업을 내 지방에 유치하겠다는 지역이기주의 행태의 하나다. 

지난 15일 '최정우 퇴출! 포스코 지주사 본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이 사실상 주소만 이전한 '껍데기뿐인 이전'이라며 '실질적 이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시민 3000여 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되는 집회 현장에는 '실질적인 기업 이전을 당장 이행하라', '포항 시민 기만하는 최정우는 사퇴하라' 등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내걸렸다. 

집회는 식전공연, 범대위 활동 시민 보고, 대회 선언문 낭독, 대국민 호소문, 연대사 및 구호 제창 등 순으로 진행됐다. 범대위는 피노키오처럼 긴 코를 가진 허수아비 코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을 투영한 인형에게 곤장 20대를 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범대위 시위 이유와 목적은 '실질적'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이다. 범대위 측은 "지난해 2월 범대위 출범 이후 포항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올해 포스코홀딩스 본사 주소 이전과 미래기술연구원 본원 포항 개원이라는 성과도 있었으나 이것은 조직과 인력, 건물이 함께 포항에 와야 한다는 시민 요구와는 거리가 먼 껍데기뿐인 이전"이라며 "현재 포스코홀딩스는 주소만 옮겨 껍데기만 포항에 보내고 알맹이인 인력은 서울에 남겨두고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름만이 아니라 그 알맹이도 포항으로 옮겨 오는 실질적 본사 이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대위가 강조하는 '포스코 알맹이 인력'은 서울 강남구 포스코타워에 상주하는 200여 명의 포스코홀딩스 직원을 말한다. 주로 마케팅과 대관, 홍보 등을 담당하는 소위 '전략부서' 임직원들이다. 특성상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할 때가 많으며, 당연히 이들은 가족과 함께 주로 수도권에서 생활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17일 포스코홀딩스는 정기주주총회에서 본사 소재지를 서울시에서 경북 포항시로 이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지난해 2월 포스코와 포항시 간 이뤄진 지역상생협력 합의에 따른 것으로, 당시 내용에는 주소지 이전만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4월 20일 포스코그룹 연구개발 컨트롤타워인 미래기술연구원 본원이 포항에 개소함으로써 관련 사안은 일단락됐다고 보는 게 업계 시각이다.

금번 범대위 시위가 "도를 지나친 행태"라며 포스코 측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이유다.

결국 범대위 등 포항 지역 일부 시민단체가 포스코홀딩스 시설과 인력을 포항으로 모두 옮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자, 포스코 측은 소재지 이전은 충실히 이행했으며 글로벌 경쟁을 위해 전략부서 등 인력은 서울에 둬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범대위 시위에 포스코 노조조차 "선 넘었다"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포항 지역 내 시민단체와 기업 간 대립이 장기화되자 이번 범대위 집회에 대해 "선을 넘었다"는 지역 여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최정우 회장 가면을 쓴 인형 코를 자르고 곤장까지 치는 퍼포먼스는 너무 과도한 설정이라는 시각이다.

먼저 한국노총 포스코노조는 지난 16일 범대위 집회 관련 입장문을 통해 "최근 범대위 행보는 합리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며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범대위와 (포스코 간) 합의사항이 이행되고 있음에도 가족과 생이별이 수반되는 근무지 이동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의 상징인 파란 근무복을 입혀 곤장을 치고, 참수 퍼포먼스를 한 것은 포항 시민이기도 한 조합원들을 욕보이는 행동"이라며 "범대위는 더는 포항 시민이기도 한 우리의 자부심을 훼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합원의 권익향상과 친환경 제철소, 미래산업을 위해 조합원 그리고 포항시민과 함께할 것"이라며 "범대위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라겠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포스코노조는 조합원 1만 명이 넘는 포스코 내 과반수 노조다.

포스코 노경협의회 근로자위원 일동(이하 포노협)도 이번 범대위 집회와 관련한 입장문을 냈다. 포노협은 근로 조건 개선이나 회사 현안을 논의하는 단체다. 직원들이 투표로 근로자위원 10명을 선출한다.

포노협은 "범대위 행동이 포항 발전을 위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며 "시위대가 사람을 묶어 눕혀서 곤장을 치고 망나니 칼을 휘두르며 인형을 절단하는 행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포항은 상생과 화합의 모습은 없고 온통 비난과 혐오의 붉은 현수막으로 가득한 도시가 돼 있다"며 "2050 탄소중립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더 열심히 달려도 모자랄 판에 회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지역사회 갈등에 휘둘리는 모습을 더는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포스코는 범대위의 비상식적 요구와 단체활동에 대해 일체 대응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포스코퓨처엠 직원대의기구 대표는 지난 19일 입장문에서 "최근 일부 단체가 여론을 호도하고 과도한 시위로 지역과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미래 발전에 심각한 장해를 초래하고 있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포스코퓨처엠이 최근 이차전지 핵심소재산업에 진출해 제2의 영일만 기적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 일부 지역사회단체가 지역기업에 보여준 부당한 행태는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글로벌 투자가에게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협력사협회도 이미 지난 9일 입장문에서 "범대위가 포항의 발전을 도모하다면 포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50만 시민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체의 활동을 중단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 포항 지역 시민·경제인 단체 "포스코홀딩스 200명 직원 내려오란 것은 현실 무시한 것"

이번 범대위 측 시위 이후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되자 포항 지역 시민과 각 기업 단체들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직원 이동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한게 아니냐"며 "현재 합의된 내용이 잘 이행되고 있으므로 소모적 갈등은 거두고 미래 지향적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일고 있다.

앞서 포항지역 JC(한국청년회의소) 등 여타 사회단체는 당초 집회 전부터 범대위 주장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경북 포항JC, 구룡포JC, 북포항JC 등 포항지역 JC 3단체는 이달 초 성명서를 내고 "포스코홀딩스 본사 포항 이전과 미래기술연구원 본원 포항 설립이 일단락됐음에도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민단체가 '200명도 채 안 되는 포스코홀딩스 서울 직원 모두 포항으로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시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포스코가 포항시민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성장했다는 이유로 포항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서울에서 근무해야 할 직원들까지 포항까지 내려오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적절치 못한 요구"라고 힐난했다.

아울러 포항지역 JC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과도한 인신공격 및 비방을 일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소모적인 논쟁과 상호비방, 흑색선전 등을 중단하고, 미래지향적 협력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오는 7월 정부에서 최종 선정 예정인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앞두고 소모적 논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차전지 산업 육성을 위해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 등 국내외 핵심기업들이 영일만산단과 블루밸리산단 중심으로 14조 원에 달하는 투자를 확정했다.

포항은 이차전지 소재 중 가장 중요한 양극재 생산 세계 1위 도시다. 2030년에는 양극재 100만 톤 생산, 매출액만 7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양극재 이외에도 이차전지 소재 매출액을 더하면 100조 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포항지역 경제인들은 "더 이상 대립각을 세우기보단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같은 지역 현안과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충남 당진서도 현대제철서 본사 이전 목소리 나와

28일 포항 지역 한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범대위 측이) 포스코 직원 배치 문제까지 관여하는 것은 도를 넘은 측면이 강하다"며 "포스코홀딩스 본사 직원들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다면 포항까지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또한, "포항시와 포스코는 60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한민국 근대화와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며 "지나친 지역이기주의를 표방하는 핌피(PIMFY)현상은 지엽적인 사고만을 강조해 합리성을 잃은 나머지 이차전지 소재 생산 등 진정한 미래지향적 현안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포항의 중요 시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충남 당진에서도 현대제철 본사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현대제철 본사는 인천에 있다. 이번에 포항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 논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이다.

당진시의회는 지난 9일 '현대제철 본사 당진 이전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당진시의회는 포스코홀딩스 본사 소재지가 포항으로 이전한 사례를 들어 현대제철 본사 당진 이전을 요구했다.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김선호 당진시의원은 "당진 시민은 그간 현대제철 발전을 위해 환경과 건강권을 희생해 왔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제철 본사는 여전히 인천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대제철이 본사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사회와의 상생 방안을 제시해줄 것을 촉구했다. 

현대제철은 지역갈등이 촉발할 것을 우려해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즈트리뷴=정유현 하영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