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편의점 시트지
[생각다이어리] 편의점 시트지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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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도 안 피우고 편의점도 자주 안 가서 이런 논란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편의점 내부의 담배광고가 편의점 바깥에서 보이는 건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사업법’에 저촉되므로 그동안 편의점들은 궁여지책으로 창에 반투명 시트지를 붙여야 했습니다. ​

편의점사업자와 근무자들은 반발했습니다.
시트지가 편의점 내외부 간 시야를 차단해 범죄 위험을 높이고 근무자의 폐쇄감과 정신적 스트레스 가중, 광고 차단의 실효성 없음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결국 국무조정실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시트지를 제거하고 금연광고로 대체할 수 있도록 최근 법을 고쳤다는 얘기입니다. ​

사실 나처럼 관심 없는 사람은 편의점 창에 시트지를 붙이든 떼어내든 잘 모릅니다.
그러나 편의점업계나 그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민감한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24시간 영업하다 보니 으슥한 밤에는 외부로부터 시선이 차단되면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겁니다.
바깥에서 훤히 보여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안심이 된다는 것이지요. ​

또 밖에서 들여다 보이는 편의점 내부 담배사진이 편의점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얼마나 흡연욕구를 자극하는지 이 정책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몇 년 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실질적 근거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법의 경직성, 불합리성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한 결과 드디어 이번에 결실을 본 것입니다. 

업계 사람이 아니라서 실질적인 혜택이나 부작용이 있을지 여부는 잘 모르지만 진행된 일련의 과정은 괜찮아 보였습니다.
합리적인 요구를 정당한 방식으로 제안하니까 바로잡아졌다는 점에서요.
사람을 모아 확성기를 켜고 도로를 점거하고 화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책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조금은 제대로 작동한 것 같아서입니다. ​

많은 사람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그걸 심판하는 관계기관(어딘지는 모릅니다)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평범한 시민이 바라는 개혁의 절차와 방향은 이런 것입니다. ​

이런 문제가 어디 편의점 시트지 문제 뿐이겠습니까. 국민이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겁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바람직한 변화, 합리적 요구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하니까 통하는 세상.
소소한 변화와 작은 환호가 쌓이다 보면 큰 변화를 이룰 힘도 생길 것입니다.

신형범 칼럼리스트
신형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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