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똘레랑스
[생각다이어리] 똘레랑스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5.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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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똘레랑스(tolerance)는 흔히 ‘자유’ ‘관용’으로 번역됩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용인하는 것, 틀렸다고 하지 않고 다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중시하는 유럽에서 확립된 개념입니다. ​

내가 볼 때 분명히 틀린 짓인데 ‘그냥 다른 거야’하면서 넘기려면 참아야 합니다.
똘레랑스는 참는 것입니다. 어원인 라틴어 ‘tolerantia’도 ‘인내’라는 뜻입니다.
시작은 종교적 인내였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구교도의 살육을 정리하면서 신앙도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한 프랑스 앙리 4세의 낭트칙령이 똘레랑스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

이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자유.평등.박애의 구호를 낳았고 우리에게는 파업에 대처하는 프랑스인의 자세를 말해주는 용어로 친숙해졌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소” 누군가 했다는 이 말은 똘레랑스 정신을 대표하는 수사로 여겨집니다. ​

딱 여기까지입니다. 내가 똘레랑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그러면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생각의 다름’에 너그럽다는데 그 인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얼마 전 노란조끼 시위대를 두들겨 패는 프랑스 경찰의 모습을 뉴스로 본 적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무슬림의 히잡 착용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교육 개혁에 반발한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했을 때 법원은 주동자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

‘다른 생각’을 막고, 금지하고, 처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치를 프랑스 사회는 받아들였습니다.
파업할 권리를 인정하지만 폭력으로 변질되는 건 용인하지 않았고 종교적 관습도 공공의 이익에 반하면 과감히 제한했으며 법치의 질서를 관용의 미덕보다 앞세웠습니다. 이런 제한 없이 똘레랑스가 무한정 적용됐다면 프랑스 사회는 아마 존속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똘레랑스의 중요한 조건은 그 행동이 ‘공동체가 용인하는 선을 지켰는가’에 있습니다.
지난 주말 시내에 나갔다가 난데없는 시위대에 휩싸였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일반 시민에게 불편을 주고 공감을 얻지 못한 파업으로 시민사회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우리 사회가 적용할 수 있는 똘레랑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신형범 칼럼리스트
신형범 칼럼리스트
goodman@biztribune.co.kr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