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작별 곁에서
[포토에세이] 작별 곁에서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5.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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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평역 ㅣ 사진=박상욱
서울 양평역 ㅣ 사진=박상욱

이것도 고정관념이거나 아니면 오래된 영화의 클리셰 같은 것이겠지만 이별이 많이 일어나는 장소 중 하나가 정류장입니다.

요즘은 이별이 온라인상으로 더 많이 벌어진다고들 합디다만.

사진은 서울 영등포의 양평역입니다. 일반 버스는 없고 마을버스만 겨우 다니는 작고 한적한, 왠지 사연 간직한 이별이 어울릴 것 같은 정류장입니다. 

표절 시비로 한동안 칩거하던 신경숙의 최근작 《작별 곁에서》를 봤습니다. 비슷한 세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그동안 시비와는 상관없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

“헤어지면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어요.
이제 만남보다 작별이 더 많은 나이잖아요. 하지만 누구나 그런 시간을 지나야 한다는 점에서… 작별은 공평하죠.” ​

《작별 곁에서》는 중편 세 편을 묶은 연작 소설입니다. 《봉인된 시간》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봉인된 시간’을 살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1979년 외교관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 온가족이 미국으로 떠나온 지 반년 만에 대통령 암살사건과 12.12 쿠데타가 일어나고 암살자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가족은 한국땅을 밟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

다음 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는 죽음을 앞둔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가슴 아픈 작별인사를 담았습니다.
암 투병 중인 친구의 메일을 받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떠났지만 친구는 만나주지 않습니다.
인도 출신 설치미술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는 우리는 강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며 사랑하는 이와 온전하게 작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표제작 《작별 곁에서》는 제주가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한 마을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몰살돼 앞집 아버지, 옆집 작은아버지 제삿날이 모두 같다 보니 자손들이 한꺼번에 몰려 동네 골목마다 자동차로 꽉 차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 들꽃처럼 널려 있는 사연입니다.
딸을 잃고 방황하던 화자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고 다시 생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세 작품이 다른 얘길 하는 것처럼 느슨하게 연결돼 있지만 결국 종류가 다를 뿐 작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사람이 내가 읽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몽골몽골해집니다.
묘한 연대감이 생깁니다. 의도치 않은 작별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보듬어 주고 사랑하는 것(사람)과 온전하게 작별할 수 있도록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형범 칼럼리스트
신형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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