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이런 게 바로 꼰대?
[생각다이어리] 이런 게 바로 꼰대?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3.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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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이 영화에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관심을 갖게 된 건 영화평 한 줄 때문이었습니다.
극장 개봉 전에 하는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한 중견 평론가는 영화 잡지 《씨네21》에 별점 한 개 반을 주고는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

문제 영화는 개그맨 박성광이 연출한 첫 상업영화 《웅남이》입니다.
혹평 때문인지 찾아보니 영화는 오늘이 개봉 열흘째인데 누적 관객 수 20만을 겨우 넘겼습니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숫자입니다. ​

평론가는 당연히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게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의 한 줄 평에서는 작품이 아니라 뭔가 다른 기운과 분위기가 느껴져 아무 상관없는 나까지 기분이 나빴습니다. 

개그맨이라는 감독의 본업과 ‘여기’로 지칭한 영화계를 ‘급’이 다른 영역인 양 선을 긋고 이방인(?)의 도전 자체를 조롱하는 뉘앙스로 느껴졌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던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평론가를 향해 ‘텃세와 무례’ ‘개그맨을 얕잡아보는 영화계 구악’ ‘이런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영화계 퇴출 대상’ 같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

출신학교와 직업, 성별, 배경 등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살아온 대중들이 박성광 감독에게 감정이입하며 분노가 촉발된 것 같습니다.
사실 《웅남이》는 박성광의 첫 영화가 아닙니다. 그는 2011년 《욕》을 시작으로 2017년과 2020년에 각각 한 편 등 세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한 전력이 있습니다. ​

대학(동아방송예술대 영화예술학과)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나름의 필모를 차근차근 쌓았지만 상업영화의 문턱은 높았습니다.
대부분 제작사와 투자자가 감독이 개그맨이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의 면전에서 ‘연출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되겠느냐’고 말한 투자자도 있었다고 박성광은 밝혔습니다. ​

그는 평론가의 비판을 의식한 듯, 한 방송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본 적 있습니다. ​

박성광의 영화가 계속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도전이 멈춘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가 개그맨 출신이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누구라도 편견 때문에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기회를 잃게 된다면 이는 결국 사회적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그 평론가는 결국 사과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개그맨을 하대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 되돌아보자는 뜻이었는데 만듦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거였는데 개그맨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슬픈 일이다.” ​

아무리 봐도 사과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데 나만 그런 건가요? 더구나 글을 도구로 다루는 평론가가 쓴 문장인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신형범 칼럼리스트
신형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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