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아파트 공화국
[생각다이어리] 아파트 공화국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2.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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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상욱
사진=박상욱

서울 양평동의 한 아파트에서 찍었습니다. 한국은 아파트가 1천만 호가 넘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의 64%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단독주택과 연립.다세대주택 비율은 각각 20%, 14%입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아파트 거주 비율이 압도적입니다.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만합니다. ​

국토는 좁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요? 일본과 대만 네덜란드 같은 나라를 보면 인구밀도는 한국과 큰 차이 없지만 아파트 비율은 현저하게 낮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한국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50년 전인 1970년만 해도 전 국민의 95.3%는 단독주택에 살았습니다.
아파트 거주비율은 1%도 안 됐습니다. 반세기 만에 상황이 기록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

우리나라에서 민간에게 공급된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는 1964년 마포아파트입니다.
이 전에도 아파트가 있었지만 학자들은 마포아파트를 아파트 개발의 기원으로 봅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정부가 주도한 건데 이 때 아파트의 인기는 높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장 담그고 김장독을 묻는 게 일반적이고 온돌문화에 익숙한데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

초기 아파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거 대책용으로 개발됐습니다. 1966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는 정부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정책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시민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아파트 공급계획을 내놓고 철거민들을 정착시켰습니다. ​

하지만 1970년 와우아파트가 부실시공으로 무너지면서 대규모 아파트 공급계획은 중단됐습니다.
이후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정책이 바뀌면서 강북지역은 택지개발을 금지하고 강남 개발에 각종 혜택을 주면서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됐습니다.
경기 서울 숙명 등 강북의 명문학교들을 강남으로 옮기면서 ‘8학군’ 전설이 시작됐고 대법원 검찰청 등 정부기관도 옮겼습니다.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한 반포와 강남 잠실 일대의 아파트 대단지들이 이 시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정부 주도형 아파트 시장에 민간 건설사들이 달려든 것도 이 시기부터입니다. ​

1980년대 전두환정권 시절에도 대규모 주택 공급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정부는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충족시키며 민심을 다독였습니다.
10년 동안 500만호 건설, 주택보급률을 90%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목동 상계동 중계동 등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이 시절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강남지역도 파죽지세로 확장해 가로축은 반포부터 잠실까지, 세로로는 압구정부터 대치 도곡까지 아파트로 채워졌습니다. ​

90년대 들어서도 아파트에 대한 집착은 지속됐습니다.
노태우정권은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수도권 외곽으로 확대하면서 불과 3년만에 아파트 200만호를 채웠습니다.
건축기술의 발달과 함께 아파트의 단점이 보완되면서 아파트를 꺼려하던 사람들도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

1975년 3%에 불과하던 아파트 선호도는 현재 77%까지 치솟았습니다.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완벽한 대세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파트는 사는 집이 아니라 자산증식 수단으로 용도가 변질되면서 투기 목적으로 매입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이유가 늘어난 셈입니다.

신형범 칼럼리스트
신형범 칼럼리스트
goodman@biztribune.co.kr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