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일과 주인의식
[생각다이어리] 일과 주인의식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3.0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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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대표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주인의식’이라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주인의식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꼰대 마인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아는 ‘장포대’라는 게 있습니다.
‘장군 진급을 포기한 대령’이라는 뜻입니다. 진급에서 떨어져 정년퇴임만 기다리는 대령급 장교입니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장포대’는 어감에서 느껴지듯 애물단지 취급입니다.
업무에 관심 없고 상부의 통제에서도 살짝 비켜나 있습니다. 대부분 직속 상관보다 ‘짬밥’은 오히려 많아서 상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

영화 《탑건: 매버릭》의 주인공 미첼 대령도 ‘장포대’입니다.
동기들은 이미 장군으로 진급해 상급 부대를 지휘하고 있고 직속 상사들은 군 경력으로 따지면 후배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급이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조종사라는 업의 본질에만 충실합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일을 생업(job) 직업(career) 소명(calling)으로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한 대학병원 관리인 루크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루크는 건물을 청소하고 시설물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아파트 경비원과 비슷합니다.
어느 날 그는 6개월째 혼수상태인 청년이 누워있는 병실을 청소하고 나왔습니다.
그 순간 밖에서 담배를 피고 들어오던 청년의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대뜸 ‘왜 병실 청소를 안 해주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루크는 억울했지만 따지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청소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이미 청소를 끝낸 병실을 그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다시 치웠습니다.
루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모든 게 원망스럽고 힘들겠지요.
그 분의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 청소 한번 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어요?” ​

슈워츠는 루크가 자기 ‘소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병원시설 관리라는 공식 직무 너머에 있는 병원 직원이 가져야 할 본질적 직무, 즉 환자와 가족들이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

우리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잃어버립니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참고 하는 일이라면 은퇴할 날만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미첼 대령이나 루크처럼 의미나 보람을 찾지 못하면 직장은 그저 전쟁터와 같고 죽지 못해 사는 지옥일 뿐입니다. ​

자기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어떤 가치를 갖는지 성찰하고 책임을 다한다는 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도 직원들이 이런 가치를 깨닫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하게 하려면 업무환경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형범 칼럼리스트
신형범 칼럼리스트
goodman@biztribune.co.kr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