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시현 작가의 '보자기', 유연하게 세상을 품다.
[인터뷰] 김시현 작가의 '보자기', 유연하게 세상을 품다.
  • 장채린 기자
  • 승인 2023.05.04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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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현 작가
김시현 작가

김시현 작가는 "보자기"라는 소재 특성을 살려 한국적 이미지를 전한다. 대다수의 작품제목은 <The Precious Message>. 전통적 형태의 보자기가 주는 한국성 포용성 모성에 더해, 최근에는 팝 등 다양한 요소까지 어우러진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령, 책들을 보자기로 싼 형상, 코카콜라 문양과 전통적 소재들의 콜라보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김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개인전을 2004년에 시작하여 국내외 44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방글라데시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을 포함 350여회의 기획단체전에 초대되었다. 그 외 다수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였고 김시현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서울시립미술관경기도미술관양평군립미술관외 여러곳에 소장되었다. 23~2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4회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대상 등 여러 수상경력을 거친 잔뼈 굵은 아티스트다.

비즈트리뷴이 그의 개인전 <YOUR SECRET STORY> 에서 김시현 작가를 만나봤다.

개인전 YOUR SECRET STORY
개인전 YOUR SECRET STORY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양화를 전공하였지만, 동양의 한국여성으로 태어나 살면서 한국적인 소재가 끌려 보자기를 그리게 된 김시현 입니다.

- 언제부터 아티스트를 꿈꿨나.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일 작은 상 하나를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를 했는데 상까지 받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장래희망은 화가였어요. 방학 때마다 그림만 그렸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The Precious Message
The Precious Message

왜 보자기인가.

대학원 졸업청구전 때 작품 컨셉을 고민하다 보자기라는 소재를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적인 소재는 많이 있습니다. 한복도 있고 다듬이도 있고, 아름다운 문양의 기와도 좋은 소재입니다. 여러 물건들이 있지만 보자기가 특히 와닿았습니다. 작든 크든 포용할 수 있는 넓이와 품을 지닌 모티브가 매력적이었습니다.

- 어떤 점에서 매력적인가.

특히 서양의 가방과 비교했을 때 보자기가 가지는 '융통성''다기능'이 와 닿았습니다. 형태가 변하지 않는 가방과는 달리 보자기는 싸는 물건에 따라 부피와 모양이 다양해집니다. 때로는 보자기 밖으로 물건이 삐죽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항아리처럼 둥글죠. 물건이 없으면 2차원의 평면으로 돌아갑니다.

용도 면에서도 서양의 가방은 한정된 물건을 '넣기'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동양의 보자기는 싸고, 두르고, 덮고, 씌우고, 가리고, 맬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물건을 싸서 품는다는 게 엄마가 아이를 품듯 모성애가 느껴졌습니다. 보자기야말로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용도는 비슷한데 보자기와 가방은 사뭇 다릅니다. 최근 가방과 보자기를 같이 나타내면서 보자기를 더 강조한 작품도 있습니다.

- 전체 작품 제목이 The Precious Message 소중한 메세지다. 안에 뭐가 있나.

제가 알려드리기보다는 관객들이 상상하게끔 합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특별한 궁금증과 설렘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게 귀한 물건을 전할 때 보자기를 쓰잖아요. 사물들이 감추어져 그 보자기 속에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The Precious Message"라는 작품 명제에서 말하듯) 관객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것을 선물합니다. 시각적 의미를 넘어 상대방과 소통을 하는 동시에 세상을 편견 없이 품고자 하는 '포용성'에 의미를 둡니다.

작품 제작과정은

365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몇 초만의 예술이라고 하는 광고부터 아름다운 미쟝센이 들어간 영화까지 영감의 원천은 다양합니다. 평소에 기억해두는 습관이 중요하고 그때그때 영감이 떠오르면 작품제작에 돌입합니다.

제 작품은 세밀한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 입니다. 본 페인팅 이전에도 캔버스 밑 작업, 보자기도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 보자기 원단을 끊어 오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작업실에 보자기들도 많습니다. 무늬가 많은 경우 더 오래 걸리죠. 동양화의 경우 여백이 많지만 제작품 중 올오버 페인팅이라고 해서 화면에 꽉 채운 보자기의 경우는 작업시간이 꽤 소요됩니다. 이후 페인팅을 시작하는데요. 오로지 페인팅만 해도 큰 작품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합니다.

하루일과가 어떻게 되나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주스를 갈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뒤 오전 10시에 출근해요. 작업실에 가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기타 업무처리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워밍업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본 작업은 11시쯤 들어갑니다. 되도록 루틴은 일정한 편입니다. 점심은 두 세시쯤 합니다. 저녁은 간단히 식사하고 밤 9시 무렵 퇴근을 하는데 개인전이 다가오면 11~12시에 퇴근하기도 해요. 제가 사랑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 운동은 간단하게라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작업실에 매트리스가 있어 스트레칭을 하거나 실내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의미가 있거나 인기 있는 작품은

오래전 고향에 갔을 때 엄마 장롱을 열었더니, 이불보들이 있었어요.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오신 동백꽃 자수가 아름다워 그 이불보로 보자기를 만들어서 작업을 했지요. 그 작품이 저에겐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색동'컬러를 이용하여 보자기그림을 그렸는데 대중들에게는 반응이 좋았습니다. ,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하늘을 감싼 보자기 작품이 실렸는데요.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발상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한국예술의 전망을 풀어본다면,

엔터에 비하면 미술은 아직까지는 약한 편입니다. 엔터는 기획사에서 체계적으로 기획, 홍보해주는 반면 미술은 자본 인프라가 약합니다. 하지만 K-pop 덕분에 달라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미술계 한류에도 영향을 미칠거라 봅니다. 내달 6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시슬리 본사에서 전시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적 소재를 세계에 알리는데 좋은 신호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어릴 적에는 원대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롱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수입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보니 주변에 힘들어서 붓을 놓는 작가들이 더러 있습니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즐기다 보면 길이 나오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예술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 또한 존경스럽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서 몇 시간씩 작업하는 것은 즐겁지 않으면 절대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비즈트리뷴= 장채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