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채우는 생각, 비우는 생각
[포토에세이] 채우는 생각, 비우는 생각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1.21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딸 때문에 알게 됐는데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는 상설전시실 ‘사유의 방’이 있습니다.
이 방에는 세계 미술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라고 인정하는 조형물인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두 점 다 국보입니다. ​

6~7세기 삼국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평론가들은 수행과 번민이 엇갈리고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가려는 것인지 애매한 자세가 사유(思惟)를 불러온다는 것이지요. 

한국에 반가사유상이 있다면 서양의 대표적인 사유의 조형물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의 원래 이름은 ‘시인(詩人)’인데 너무 사실적이어서 사람 위에 직접 석고 물을 붓고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오해를 산 적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이라는 조각품의 일부로 단테의 《신곡》에 있는 아홉 번째 지옥문을 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신권 수호를 자처하던 황제와 고위 성직자들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으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신곡》은 말하고 있습니다. ​

한 평론가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사유상을 비교하면서 “반가사유상은 볼수록 세상을 초월한 듯 고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정갈하고 깨끗하며 해맑은 미소년의 모습인데 비해 ‘생각하는 사람’은 심연에 빠진 듯한 절망과 고뇌에 가득 찬 모습이다.
동.서양의 세계관, 문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또 “동양의 지혜(wisdom)와 서양의 지식(knowledge), 생각을 비운 상태와 생각으로 꽉 찬 상태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어떤 설명이 됐든 창작물은 창작자에 의해 한번 태어나고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두 번째 태어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사진= 박상욱
사진= 박상욱

오늘 사진은 카페 앞을 지나다가 찍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요즘 MZ세대라고 고민이 없을까요.
고민이 깊어지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남의 얘기, 남의 생각, 남의 바람이 아니라 나의 생각,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나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게 후회가 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