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너 몇살이야"
[생각다이어리] "너 몇살이야"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0.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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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이 들립니다.
지하철 전동차에서 이 말은 질문이 아니라 선전포고입니다.
직전의 상황은 아마도 이랬을 것입니다.
“근데 왜 반말이세요?” 다툼의 이유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휴대폰 방송이 너무 시끄럽거나 꼬고 앉은 다리 때문에 불편하거나 젊은 것이 경로석에 앉았거나. 

이유가 뭐가 됐든 분쟁의 종착점은 대체로 나이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다툼이 벌어지면 나이가 많다는 건 태권도에서 검은띠 정도의 위력을 갖는 것과 비슷합니다. ​

왜 이렇게 유독 한국에서는 나이가 권력일까요.
가능한 추론 중 하나는 농사문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능력은 결국 나이의 경험으로 얻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한국과 비슷한 동북아시아의 ‘검은띠’ 존중문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

‘지하철 싸움’뿐 아니라 운전하다가, 길을 가다가도 ‘검은띠’는 상대를 제압하는 도구로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아니,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꼰대’가 공식적인 개념으로 사회에 등장하고부터는 급격히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검은띠’만으로는 키오스크에서 햄버거 주문도, 인터넷으로 산 물건의 환불도, 통신사가 제공하는 영화티켓 할인도 어렵습니다.
가끔 대한민국의 현재를 개탄하면서 미래를 우려하는 ‘검은띠’들을 봅니다. ‘검은띠’들의 진짜 문제는 ‘과거’ ‘자기’만의 잣대로 미래를 본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냉정히 보면 대한민국의 파란띠 빨간띠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경쟁력으로 무장한 세대입니다.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 풍경은 흰색 검은색이 아닌 알록달록 천연색일 것입니다. 걱정하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들에게 맡겨 두면 다 평온해집니다. 지하철 좌석부터 도로 운전, 광화문 광장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