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79일의 기적] ③ 창사이래 최대위기 속 '포스코 정신' … "다시 뛰는 대한민국 강철 심장"
[르포 79일의 기적] ③ 창사이래 최대위기 속 '포스코 정신' … "다시 뛰는 대한민국 강철 심장"
  • 김려흔 기자
  • 승인 2022.11.24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김려흔기자(비즈트리뷴)] "제철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1100도의 열풍이 죽었다던지 냉각수가 스톱된다면 1500도의 액체가 굳어가기 시작하는 데 이를 냉임상태라고 한다. 이 마지노선이 3일~7일이다. 그전에 돌려야 한다. 이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직원들이 4일 동안 잠 한숨 못자고 링거를 맞아가며 고군분투했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천시열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담당 부소장의 당시 회상이다. 

그의 회상처럼 포스코 직원들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에는 침수 피해만 심각한 것이 아니라 인명 피해 우려가 느껴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물살은 바다와 같이 크고 빨랐으며, 포스코 현장에 표시된 침수 높이는 168cm인 본 기자의 신장을 기준으로 가슴 높이에 이르렀다. 이는 최대 12m 지하가 다 잠기고도 1미터가 넘는 수준으로 지상이 잠겼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 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공장 투어를 진행한 직원은 "제가 포항에 온 지 10년인데 압연 공장에 불빛이 꺼진게 이번이 처음"이라며 "먹먹한 마음이고 남편이 선재에 있는데 내일 모레 드디어 가동을 하려고 준비중이라고 한다. 얼굴 못본 지 꽤됐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동영상의 공포(?)가 미처 사라지기 전에 제철소로 향했다. 놀랍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현장이 맞는 지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무엇보다 의외였던 것은 제철소 직원들의 표정이었다. 

침수된 물을 퍼내고 토사와 전투하느라 육체가 고단했을테고 그 고단함이 가시기엔 기간이 너무 짧다. 여전히 정상화를 위해 안내 직원이 언급한 내용처럼 가족도 잘 보지 못할 정도로 고군분투 했을텐데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직원들의 얼굴은 오히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1호 손병락 명장은 "혹시 황하에 가보셨냐"면서 "제가 포스코 입사 46년차인데 태풍 힌남노의 당시 아침은 중국의 황하 같았다. 아니 정말로 황하였다"고 했다. 손 명장은 "황하와 같은 상황이 지나가더니 물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침수된 설비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2열연공장은 우리나라 가장 핵심 공장이다. 여기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철강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데 이곳은 모터 하나하나가 100톤이 넘는데다 어느 것 하나라도 멈추면 다 스톱되는 설비이다. 피해로 인해 전기도 안되고 인프라며 유압이며 모든게 오프된 상황이었다"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포스코 정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손 명장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믿을 것은 우리의 열정과 지난 54년 쌓아온 우리의 기술 밖에 없었다"면서 "당시에 후배들이 '명장님 (복구)되겠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제가 '우리 포스코가 언제 되는 목표를 세웠냐 (우리는)안되는 걸 되게 했다'고 답했다. 이제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후배들아 우리 여기까지 왔다. 그 마지막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웠다.  

그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정말 다행스럽게도 경영진들이 확률상 성공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복구를 해보겠다는 이 고졸사원 말 한마디에 빠른 결단으로 믿고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 싶고, 저희는 지금 복구하는데 열정도 사람도 모든 것이 준비됐다. 딱 하나가 부족하다"면서 "끝까지 힘내서 살리라는 따뜻한 격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손 명장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 있는데 저를 따라준 직원들과 함께 혼을 담아 13대 중에 11대가 완료됐고 나머지도 완료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연이 만든 위기에 포스코에는 또다른 작은 변화도 생겼다. 

천 부소장은 "제철소에 MZ세대들과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50대 60대 직원들이 잘 섞이지 않았는데, 이번 위기를 계기로 결속되는 분위기가 강하다"면서 "피해를 입기 이전에는 잘 없었던 풍경인데 이를 계기로 선배들의 경험을 많이 보고 배우는 눈치"라고 흐뭇해 했다.

▲ 포스코가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해 포항제철소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고객사 현대중공업이 포항제철소 복구응원 커피차량을 지원하고 있다.
▲ 포스코가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해 포항제철소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고객사 현대중공업이 포항제철소 복구응원 커피차량을 지원하고 있다.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고 78일이 지난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현장은 기자의 신분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눈물이 났다. 

힌남도 당시 침수가 되고 이후에 포스코에는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전문가들까지도 '복구는 불가능하다', '물만 빼는데 올해가 다 지나간다', '포스코는 끝났다', '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이런 사태를 발생시켰다' 등의 거센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직원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노력들이 멈추지않았다. 포스코를 향해 내미는 포항 시민들의 많은 도움과 국내 여러 기업들의 지원도 끊이지 않았다. 이제 다시 포스코는 전 세계시장에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빨리빨리'의 민족성향으로 고도성장을 이뤘다고는 하나, 지금은 작은 도움, 그리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작은 격려만으로 포스코는 힘을 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