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다이어리]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생각 다이어리]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9.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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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의 우방국인 벨라루스에선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1984》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벨라루스 당국은 지난 5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것입니다.​

《1984》는 ‘빅브라더’라는 권력자가 등장해 미래 정보기술을 이용해 전 국민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사회체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던 참이었는데 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졌습니다. ​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이유로 다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이 중 ‘생계’ 때문에 쓰는 이유를 제외한 네 가지는 첫째, 순전한 이기심입니다.
똑똑해 보이고 싶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또 사후에 기억되고 싶고 어린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등등의 이유가 여기에 속합니다. ​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입니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이유입니다.
글을 쓰는 마지막 이유로 오웰은 정치적 목적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광범위한 이유로 사용됐습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의도를 뜻합니다.당연히 이 다섯 가지가 글을 쓰는 이유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오웰 자신에게는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이 가장 부합한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에 다른 이유들도 조금씩 녹아 들어 결국에는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되는 것 아닐까요. ​

당연히 이 다섯 가지가 글을 쓰는 이유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오웰 자신에게는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이 가장 부합한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에 다른 이유들도 조금씩 녹아 들어 결국에는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되는 것 아닐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건 ‘생계’ 목적으로 글을 쓰게 되면 나머지 네 가지 목적과는 적정선에서 타협하게 되고 내용이나 표현의 강도를 절충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웰도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다'라며 정치적 목적의 글을 예술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내 생각엔 그런 작품이 《1984》와 《동물농장》이 아닌가 합니다. ​

오웰이 밝힌 글을 쓰는 여섯 가지 원칙도 도움이 됩니다.
첫째 익히 봐 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셋째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넷째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다섯 째 외래어 과학용어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여섯 째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

이건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 쓰기》 〈문장론〉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말에는 수동태가 없지만 수동태가 흔한 영어가 모국어인 작가조차 수동태 사용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말이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가는 이유는 잘못된 서양어투나 문체에 오염된 영향이 큽니다. ​

이번에 나는 《나는 왜 쓰는가》를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한 권 사 둬야겠습니다.
아무 때고,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읽을 게 있습니다.
또 아무 페이지를 봐도 글을 쓰는 이유가 다채롭습니다.
이오덕 선생도 글을 짓지 말고 삶 속에서 글을 낳게(쓰게) 하라고 하셨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가들의 가르침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