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다이어리] 지루한 건 못 참아
[생각 다이어리] 지루한 건 못 참아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9.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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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화제가 되면서 인기를 끈 드라마 《수리남》을 지난 추석 연휴 때 봤습니다.
요즘 제작하는 드라마들이 12부나 16부작이 보통인데 비해 《수리남》은 6부작이라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여서 쉽게 덤벼들 수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한 덕에 거의 쉬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드라마를 완주한 스스로가 기특해서 만나는 사람 몇몇에게 《수리남》을 봤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 보지는 않고 1시간으로 압축한 편집본을 봤다”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화제가 되는 드라마는 줄거리라도 알고 있어야 대화에 낄 수 있기 때문에 다 보기는 부담스럽고 압축해 편집하고 해설까지 붙인 컨텐츠들을 많이 봤었습니다.
16부작 드라마를 길게는 세 시간부터 짧게는 한 시간으로 줄이거나 두 시간짜리 영화는 30분 안팎으로 줄여 제공하는 컨텐츠가 넘쳐납니다.

영화, 드라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 발매된 걸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셧다운》은 2분 55초입니다.
기존 ‘K팝은 3분대’라는 공식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 같은 추세는 주요 음원차트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음악 플랫폼 〈멜론〉의 지난 주 차트 상위 10곡 중 5곡의 러닝타임이 2분대입니다.
짧게 핵심만 요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면 컨텐츠 길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K팝은 3분대, 드라마는 16부작이라는 '업계 관행'이 깨지면서 짧은 컨텐츠가 트렌드가 됐습니다.
이 같은 원인은 주 소비층의 달라진 소비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틱톡〉이나 〈쇼츠〉 〈릴스〉 등 기존의 파워 플랫폼이 제공하는 숏폼 서비스를 통해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영향이 가장 큽니다.
이 영상의 특징은 짧은 시간에 핵심만 전달하는 것입니다. ​

숏폼 컨텐츠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지루한 걸 참고 견디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컨텐츠가 쏟아지면서 길이보다는 밀도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전개과정은 압축하고 결론까지 빠르게 연결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평가와 흥행 모두 노리는 제작환경과 방송사의 바뀐 수익구조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

결국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덜 지루하고 더 간단하게’가 대세가 됐습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를 짧은 호흡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춰 친절하게 전달하는 컨텐츠에 관심을 갖고 지갑을 여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숏폼에 익숙해지면 깊이 있는 체험을 할 수 없고 소비 중심의 문화로 흘러갈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짧은 것’은 거스를 수 없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