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다이어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6.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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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정리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누구하고든 잘 지내려고 애쓰고 다른 이의 말에 가능하면 웃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라도 몰래 시게를 힐끔거릴지언정 지루해도 참았습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써주고 듣기 불편한 말이라도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대신 내 얘기는 가급적 아꼈습니다.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드러날까 봐 마음 졸이며 사람들 속에 묻혀 지내는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디도록 다른 이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나 또한 미움 받지 않고 싶어서, 관계가 두려워서, 어디서든 누구라도 그저 무난히 지내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만났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맺은 관계들 중에 지금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는 나 혼자만 남아버렸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왜'좋은 나'로는 느껴지지 않는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만난 선배를 엊그제 만났습니다.
그는 내 사수였고 10년을 한 부서에서 일했고 알고 지낸 건 30년이 넘었습니다.
너무 모처럼 만나 처음엔 약간 어색했으나 술잔이 몇 순배돌자 우리의 기억은 금방 3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갔다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만큼 선배는 변했고 그런데도 한결같았습니다.
나 또한 변했을 것이고 고집스레 간직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달라진 만큼, 또 변하지 않은 만큼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대리기사를 불러 차를 같이 타고 나란히 앉아 오면서 알았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오는 길이 이렇게 좋았구나.

그날 선배한테 하지 못한 말들이 지금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닙니다.
"선배, 이제 마음 편하게 만나는 사람이 몇 명 안돼요.
좋은 관계란 도대체 뭘까요. 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재밌는 친구, 멋진 선배, 다정한 아빠, 괜찮은 남편. 그런데 나는 한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로 마음을 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겐 서운한 사람, 어려운 사람, 무서운 사람, 심지어 나쁜사람이 되어 있을수도 있을 수 있어요.
좋은 사람은 또 뭔가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큼은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 하나는 이미 찾았구나.
힘들 때 어깨를 기대고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있었습니다.
나는 왜 '되려고만'했을까요.
이미 곁에 있는데, 살면서 필요할 때, 필요한 한 사람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문득 전화 걸고 싶은 사람 하나. 따뜻한 밥 한끼 같이 먹을 사람 하나.
편하게 소줏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 하나. 그런 사람들 하나씩 하나씩 찾아내는게 삶을 꾸리는 일입니다.
어쩌면 내가 사는 방식은 '좋은 사람 되기'가 아니라 '좋은 사람 찾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