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탄소중립 더딘 이유? “탄소 줄이려해도 규제때문에”
[분석] 탄소중립 더딘 이유? “탄소 줄이려해도 규제때문에”
  • 하건영 기자
  • 승인 2022.05.29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게티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

국내 제조기업 10곳 중 9곳은 탄소중립 추진과정에서 규제애로를 경험했고, 이로 인해 관련 사업추진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가 최근 국내 제조기업 302개사를 대상으로 ‘산업계 탄소중립 관련 규제 실태와 개선과제’를 조사한 결과, 기업 92.6%가 탄소중립 기업활동 추진과정에서 규제애로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없었다’ 7.4%> 이들 기업 중 65.9%는 규제 때문에 ‘시설투자에 차질’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어 ‘온실가스 감축계획 보류’(18.7%), ‘신사업 차질’(8.5%), ‘R&D 지연’(6.9%)을 겪었다고 답했다.

애로사항 유형으로는 ‘복잡‧까다로운 행정절차’(51.9%)가 가장 많았고, ‘법‧제도 미비’(20.6%), ‘온실가스 감축 불인정’(12.5%), ‘해외기준보다 엄격’(8.7%), ‘신사업 제한하는 포지티브식 규제’(6.3%) 순으로 조사됐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중점 추진 중인 기업 활동은 ‘전력사용저감’(55.5%)이 가장 많았다. 이어 ‘연료‧원료 전환’(19.5%), ‘재생에너지 사용’(10.2%), ‘온실가스 저감설비 구축 등 공정 전환’(8.2%), ‘신사업 추진’(4.7%), ‘혁신기술 개발’(1.9%) 순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많은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수단이 부족한 상황이고 규제부담도 없어 ‘전력사용저감’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신사업 추진’과 ‘혁신기술 개발’은 큰 비용부담, 규제 애로 및 법제도 미비, 사업 불확실성 등의 이유로 응답비중이 낮은 것으로 풀이했다.

■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대기총량규제 등 제도개선 필요

탄소중립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도 및 규제로는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42.1%)가 가장 많았고, ‘대기총량규제’(24.7%), ‘시설 인허가 규제’(19.2%), ‘재활용규제’(14%)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기업의 다양한 온실가스감축활동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상쇄배출권’ 활용 한도를 확대하고 해외온실가스배출권의 국내 전환 절차를 간소화해줄 것을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2030 국가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면서 국외감축량 목표를 2배 이상(16.2 → 33.5백만톤) 확대한 상황이다. 

상쇄배출권이란 배출권거래제 대상기업이 사업장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한 경우, 이에 대한 실적을 인증받아 배출권으로 전환하는 제도이다. 기업은 상쇄배출권을 배출권거래시장에서 매도하거나 온실가스배출량의 5%까지 상쇄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상쇄배출권 활용 한도가 배출권거래제 2기(’18년~‘20년)에 10%였다가 3기(’21년~’25년)부터 5%로 축소되면서 실제 다수 기업이 해외사업 추진을 중단하고 있다. 

해외 감축사업을 추진한 D사는 “해외사업을 통해 얻은 배출권을 국내 상쇄배출권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산하 CDM집행위원회’의 공식 승인을 받은 해외감축사업에 대해 정부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하고, 이때 온실가스 감축량의 일부만 인증 받는 경우도 많아 해외 사업의 배출권 수익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국내 상쇄배출권 활용도는 매우 낮은 상황이다. 

아울러 대한상의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신증설 시설이 대기배출시설에 해당하는 경우 대기관리권역법에 따라 배출허용총량을 추가할당 받아야 하는데, 총량 여유분을 초과할 경우 할당 받을 수 없어 권역 간 거래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재활용시설을 신설하려는 E사는 “대기배출허용총량을 추가 할당받아야 하는데 해당 지역에 대기배출허용총량 여유분이 없어 사업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탄소중립 이행 시설의 경우 신증설이 가능하도록 추가할당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장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국내 상당수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아 도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새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하고 제도적 기반을 조속히 마련해 우리 기업이 마음껏 탄소중립 투자를 하고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규제 걸림돌 사례

#1. 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 Storage  탄소포집·활용·저장) 사업

CCUS는 탄소배출량을 흡수하는 중요한 감축수단이다. A사는 공장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는 탄소포집·활용기술을 개발했지만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기물관리법’상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폐기물로 분류돼 폐기물 관련 인‧허가 취득이 필요하고, 재활용 용도도 일부 화학제품으로 제한돼 건설소재로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설‧장비‧기술능력 등 허가요건을 갖추는데만 1~2년이 소요된다. A사는 인허가를 받기 위해 지자체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주민 기피시설이라는 이유로 부적정 통보를 받았다. 산업단지 입주도 제한됐다. 현재 A사의 해당 사업은 보류 상태다. 

#2. 사용후 배터리(전기차 폐배터리) 사업

B사는 기존 배터리사업을 확장해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사업’ 추진을 검토 중인데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용 후 배터리는 순환자원이 아닌 폐기물로 분류돼 폐기물처리업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처리 단계별로 적용되는 법규만도 5개 등으로 복잡하다.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 사업’의 경우에는, 재사용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배터리 잔존가치검사 비용이 문제다. 신품 배터리가 2천만원인데, 검사비용이 1천만원에 달해 사용후 배터리가 신품 배터리보다 비싸질 수 있다. 국내 사용후 배터리 규모는 2029년에 7만8981개로 2020년 대비 500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에너지경제연구원)  

#3. 에너지슈퍼스테이션 사업 

C사는 전기를 직접 생산․공급하는 에너지슈퍼스테이션 사업을 추진 중인데 사업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주유소와 LPG충전소에 설치 가능한 시설 목록에 에너지슈퍼스테이션에 필수적인 ‘연료전지’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사업만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승인을 받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