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무엇이 더 센 방어벽인가? 38선 철조망 vs 개인정보보호법
[세상읽기] 무엇이 더 센 방어벽인가? 38선 철조망 vs 개인정보보호법
  • 오순복 원장
  • 승인 2021.1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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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보듬지 말고 거리를 두라는 인간 사랑 기피제 코로나의 무자비한 강요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촉촉하고 훈훈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자석 같은 끌림은 막지 못한다.
 
“아프지 마셔, 울지 마시고.”
지적장애인들을 위문차 오신 지역 어르신에게 지적장애인이 오히려 위로하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울지 않는 어르신에게 울지 말라고 말한 자신이 먼저 훌쩍거린다. 지적장애인도 이미 경로 어르신 대열에 합류한 연세이나 숫자를 모르는 본인은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젊은이로 생각되나 보다.
 
“나만 이렇게 따르고 좋아해서 이를 어째?”
불과 몇 살 차이 안 나는 어르신이 난감해하면서도 봄에 행복치유농장에서 또 만나면 된다고 다독이신다. 이내 어르신도 정이 북받쳐 올라 눈가가 촉촉해진다.
 
얼마나 사람의 정이 그리우면 저리도 부둥켜 안고 글썽거릴까 생각하니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아무래도 수년간 연락처가 오리무중인 보호자를 찾아야겠다. 개별서비스지원 평가회의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한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젊을 때는 가족 언급을 비교적 덜 하나 나이가 들수록 혈육의 정이 더 그리워지는지 언뜻언뜻 먼 옛날 고향 집과 연락 끊긴 지 까마득한 가족들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리운 가족 대신 봉사자로 대체되어 이산가족 상봉하듯 눈물 바람이 분다.
 
몇몇 사람들로 인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해석일 수도 있겠으나 6, 70년대 순수했던 우리 사회에 욕심많은 사람들이 사기와 속임수의 재를 뿌려 불신사회로 망가뜨린 후 명백한 이기심으로 제정한 대표적인 악법이 개인정보 보호법이라고 생각한다. 왜 악법인가? 이미 취할 것 다 취한 똑똑한 사람들이 개인정보 보호의 명분으로 이 법을 이용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의무나 역할을 합법적으로 은폐 혹은 유보시키고 접촉을 시도하는 피부양자와의 단절 혹은 차단을 38선 철조망보다도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성을 다하여 애정어린 격려를 해주는 보호자도 있지만 연락두절된 보호자들과는 한 나라 지척에 살면서도 남북 이산가족만도 못하게 상봉할 수가 없다. 경찰력을 동원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강력한 법이다.
 
직계 가족이 넉넉해도 재산을 형제자매 즉, 방계로 빼돌려 약자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만들어 사회에 책임을 떠넘긴 후 수십 년 연락을 끊어 개인정보 보호법이라는 장독대 뒤로 꼭꼭 숨으면 절대로 잡히지 않는 숨바꼭질이 된다. 몇몇 사람들이 그러하여 오히려 법을 사회현상에 맞추어 긍정적으로 개정한 듯이 1961년부터 시행해 오던 부양의무제를 2021년 10월부터 폐지했다. 이제는 숨을 필요도 없어졌지만 다만 양심의 문제가 걸려서 그야말로 보호자의 “coming out”이 쉽지 않다. 젊은 세대에는 장애인 인식개선이 많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다는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절대로 찾고 싶지 않은 가족인 것이다. 부모는 수치스러움보다는 조건없는 사랑이 있어서 자식을 보고 싶어하나 형제 자매의 심정은 부모와는 엄연히 다르다.
 
아버지의 제적등본을 떼어서 어떠어떠한 형제가 있고 그 형제의 주민번호를 다 알아도 개인정보 보호법상 당사자의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주민등록등본을 뗄 수가 없으니 주소를 알 길이 없고 전화번호도 모르니 결과적으로는 복지시설에 현대판 고려장을 당한 꼴이다. 어쩌다 동네 이름이 생각나서 인터넷 주소로 찾아본들 주민과의 관계 훼손을 우려하여 동네 이장을 통한 사람 찾기도 철저히 봉쇄되어 네비게이션을 찍고 동네를 방문하여 가가호호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은폐 의도를 가진 보호자들은 집에서 최대한 멀리 위치한 시설에 장애인을 보내는 특징이 있어서 고향 집 한 번 찾아가려면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예 가족 없다 치고 그리워하지 않고 살면 되지만 본능적으로 생각이 나니 그것이 문제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든 이들은 법끼리 충돌하여 엄연히 장애인차별현상이 발생하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을 통제할 의도로 만든 법이 약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일로 귀결되지 않도록 예외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책임하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민주국가가 아니었든가, 대한민국이.
 
그리워해서는 안 될 가족을 그리워함이 문제일까? 보고 싶은 사람 한 번 본다는데 산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철저히 단절된 사회가 문제일까?
 
 
아이러니
 
머리를 맞대지 않아도 지적장애인은 매일 감동을 창조한다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이 제일 단정하다
면역력 약한 난치병 환자들이 가장 깔끔하다
 
여성보다 섬세한 남자가 카사노바이다
남자 나무 냄새가 옅은 여자 꽃 냄새에 묻혀버린다
엄마는 시집을 왔으나 아빠 집은 엄마다
 
과학이 포기한 곳에 신의 기적이 있다
눈 어둡고 손 떨려도 퇴적된 기술은 늙지 않는다
지난 겨울에 이미 확정된 풍년을 애걸복걸 기원한다
 
지적장애인이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다
계산하는 이성 대신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사랑이신 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장애인거주시설 아름다운마을 오순복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