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너 몇살이야
[생각다이어리] 너 몇살이야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4.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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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나이에 대한 집착은 유별납니다.
친해지기도 전에 나이 먼저 따져봅니다.
한 살 차이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반말과 높임말의 서열이 정해집니다.
따져 보면 며칠 차이 안 나는데도 위아래가 정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이를 따지면서도 나이를 게산하는 건 왜 그렇게 허술한지 어이가 없습니다.

예를 한번 볼까요? 2020년 6월에 태어난 아이는 '세는나이'로 세 살, '연나이'는 두 살,'만나이'로는 한 살입니다.
'세는나이'는 태어나면 바로 한 살입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습니다.
이 계산법으로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하루만에 두 살이 되지만 1월 1일에 태어나면 1년이 지나야 두 살입니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만 사용하는 나이 계산법입니다.

'연나이'는 현재년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방식입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같은 나이를 적용 받습니다.
병역법 청소년법 등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나이'는 태어난 날이 기준입니다.
태어나고 1년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먹습니다. 보험이나 병,의료는 '만나이'가 기준입니다.

이런 나이 계산법은 실생활에서 혼선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어린이 감기약 섭취 기준 12세 미만' '30세 미만 화이자 백신 예방접종 미권장' '19세 미만에게 술 담배 판매 금지'같은 설명을 보면 어떤 나이를 기준으로 할 지 헷갈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새해 첫날, 소셜미디어에 "한국인 여러분,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가 뜬다고 합니다.
5200만 명이 한날 한시에 나이를 먹는 놀라운 '한국식 나이 셈법'을 조롱하는 외국인의 야유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이런 희한한 나이 셈법을 지금가지 고집해왔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한국식 나이'를 손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급하고 중요한 다른 일도 많은데 이게 과연 인수위가 나설 일인가 싶지만 그동안 오죽 저항이 심했으면 그럴까, 이해도갑니다.
그동안 문제의식을 갖고 바꾸자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전통' '관습' '고유문화' 운운하는 꼰대들의 논리에 소수 의견으로 묻히고 말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고집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국민생활의 혼란을 없애고 불필요한 사회경계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인수위의 결정에 100% 동의합니다.
비효율을 걷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웃음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참에 나이 따지는 문화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서열이 되지 않는 사회가 더 유연하고 다양하며 풍요로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