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인물평가
[생각다이어리] 인물평가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3.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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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에 태어난 찰스 다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화론을 발표한 그 다윈 말입니다.
반면 다윈과 도갑인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이름은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글래드스턴은 19세기 후반 영국 총리를 네 번이나 지낸 저명한 정치인입니다.

당대의 시각에서 보면 다윈은 일개 학자이자 저술가에 불과했으며 글래드스턴은 영국을 쥐락펴락하는 거물급 정치인입니다.
그런 글래드 스턴이 다윈을 방문한 적 있습니다.
다윈의 학문적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윈은 권력자의 방문에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에피소드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다윈이 정치 권력자의 방문을 영광으로 여긴 것은 그의 겸손한 성품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게 '역사적 안목'이 없음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다윈이 명예롭게 여긴 게 맞을지 모르나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영광으로 여겨야 할 사람은 다윈이 아니라 오히려 글래드스턴이라는 겁니다.

러셀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간단합니다.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평가는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인물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후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180도 바뀌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매스컴에 등장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세상을 흔들고 역사의 흐름을 온통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너 러셀의 시각으로 보면 진정한 가치는 다른데 있을지 모릅니다,
백년,이백년 뒤에 반짝이던 이름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당대에 존재감 없던 작가나 인정받지 못하던 정치인의 이름이 기억될지 모릅니다.

학자든 정치인이든 에술가든 후세의 평가와 역사의 심판을 의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로 정권을 차지한 사람들도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후수도 내세도 두렵지 않은 현세주의자들에게는 모든 게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