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폭설 
[생각다이어리] 폭설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1.12.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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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박상욱 작가
ㅣ 박상욱 작가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점-----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일순에!
때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파묻는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윤제림 시인의[폭설]이라는 시입니다.
우연인지 내가 사는 동네에도 주말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시 제목처럼 폭설은 아니었지만 마침 아들이 운전하는 차 옆에 타고 있었는데 평소 같으면 30분 정도  거리를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습니다.

이번 주 후배가 보내온 사진은 뉴욕에서 찍은 겁니다.
지난 2월,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지역에 눈이 60cm나 내려 시의 내용처럼 우체국이 파묻히고 철도는 끊어지고 비행기도 뜨지 못했습니다.
학교도,코로나 백신도 모두 중단됐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부처 방문도 연기했을 정도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주말에 맞은 눈은 애교 수준입니다.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을 정도는 됐겠지만 철길을 끊지도,우체국과 정거장을 파묻지도 못했습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겪었지만 모처럼 되찾은 동심과 정서적 푸요로움을 치른 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손해 본 거래는 아닙니다.

너무 많이 내리는 눈 때문에 이왕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거,온전히 묻혀나 보자는 시인의 귀여운 '자포자기'를 빙그레 미소 지으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