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미워하는 감정의 힘
[생각다이어리] 미워하는 감정의 힘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1.11.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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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무엇일까요? '사랑'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지고 지순한 사람입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별다른 정보가 없을 때 사람들은 호오의 감정으로 판단합니다.
이 최초의 이미지는 너무 강력해서 이후에 따르는 이성적 판단은 그 아래에 종속시켜 버립니다.
그 때 이성은 감정이 내린 최초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이번 대선 과정을 보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이번 대선은 '증오 투표'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캠프도 자기 후보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없습니다.
그저 상대 후보를 향한 적의가 있을 뿐.
상대에 대한 증오, 그것이 그들이 자기 편 후보를 지지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역대 최악의 대선, 비호감 선거'로 불리는 근거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진영 사이에 적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지나쳐 아예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증오의 감정에 기초한 정치를 다시 이성적으로 대화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합리주의자 데카르트는 이성으로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경험주의자 흄은 데카르트의 생각은 비현실적이라고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상을 관찰해 보면 이성이 감정을 이기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안으로 흄은 이이제이(以夷制夷) , 즉 특정한 감정을 그보다 더 강력한 감정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인간이 가진 수많은 감정 중에서 제일 강력한 게 증오의 감정입니다.
사랑이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증오만큼 집요하고 강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감정으로 증오를 제어한다는 흄의 전략도 여기엔 소용이 없습니다.

증오가 특정 집단을 겨냥하면 혐오가 됩니다.
정치인들은 증오뿐 아니라 혐오까지 이용합니다.
그 바탕에는 이 사회의 부정적 감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차피 비전도 희망도 없는 세상, 그 해결책 마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불행의 원인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지목해 미워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증오와 혐오가 이 가혹한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