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
[생각다이어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1.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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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이 동료 시인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는데 작년의 계획은 이랬답니다. "더 자주 늦잠을 자고, 야식을 종종 먹고, 줄넘기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마감 같은 거 일주일씩은 늦을 것, 짝꿍에게는 더 징징대고 인간관계는 더 복잡해질 것. 그러니까 마음을 다해 대충 살 것." 그리고 그는 작년 계획의 상당수를 달성했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땐 웃어넘겼는데 잠들기 전에 그 계획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거창하진 않지만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사람임을 자각하는 순간들이 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시인은 작은 것들이 가져다 주는 활력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동시에 작은 계획을 달성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인 듯 싶습니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계획이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계획입니다. 어떤 일을 진득하게 수행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싫증을 느끼고 끈기가 부족해서 그만두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의 계획을 세우고 사람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일상에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을 계획으로 삼는 일은 거창하진 않아도 근사합니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시인의 계획을 모방해서 나는 올 해 나의 계획을 몇가지 세우려고 시도해 봅니다. 자주 산책하기, 틈틈이 메모하기, 일상에 널려 있는 작고 무가치한 것들 눈여겨보기, 그것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생각 날 떄 곧바로 전화하기...

 

항목들을 적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어떤 계획은 성과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나를 더 생생하게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항상 살지만 가끔은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가끔이라서 더욱 소중한 순간을, 항상이라서 지나치기 쉬운 순간을 마음에 더 새기는 습관을 가져보려 합니다. 작은 것들이 내 삶의 물꼬를 터주는 상상을 해봅니다. 거창한 것들이 아닌 주변의 작은 것들을 통해 내년 이맘때쯤 나는 더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형범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