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자의 품격 
[칼럼] 패자의 품격 
  • 이규석 국장
  • 승인 2022.03.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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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 H.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뜨거운 경쟁을 벌였다. 이 맞대결에서 클린턴 후보가 웃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면서 편지 한통을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 레터에서 후임 대통령에 대한 조언과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이걸 읽을 때쯤이면 당신은 대통령이 돼 있겠죠? 
"앞으로 공정하지 않은 비판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결코 낙담하거나 길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부시대통령이 비록 물러나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원수로서, 후임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또 부시 대통령이 얼마나 멋진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는 지를 엿볼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18일, 한국시리즈 4차전. 
KT는 이날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8-4로 승리한다. KT는 창단이후 8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며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바로 다음날 신문의 광고면에 두산이 KT의 우승을 축하하는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두산팬은 물론 KT팬들, 프로야구 팬들 모두는 감동을 받았다. '패자의 품격' 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두산은 광고지면에 이렇게 적었다. 

"구단창단 첫 우승을 이룬  KT위즈 이강철감독과 선수단, 팬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두 팀 덕분에 올 가을, 행복했습니다" 

두산 광고
당시 두산 광고

프로야구팬들에겐 자부심을 심어줄만한 '패자의 품격'이다. 품격있는 플레이로 야구팬은 늘 수 밖에 없다. 

오는 5월9일이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하는 문재인 대통령.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만큼, 이번 대선의 패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5년전 대선공약에도, 10년전 대선공약에도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않았다. 오히려 이번 20대 대선에서 승자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를 떠나 용산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지난 70여면 이른바 '왕의 시대'를 끊어내고 진정한 국민의 시대를 열어젖힌 한국정치사의 일대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역사는 이 장면을 어떻게 기록할까. 청와대의 마지막 대통령 문재인과 탈(脫)청와대의 최초 대통령 윤석열. 문 대통령은 이렇게 기록될 역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용산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집무실 비용 496억원의 예비비를 처리해주지 않겠다고 한다. 50일 뒤에 대통령의 자리를 맡기고 떠나야하는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위해 진심을 담은 편지 1통은 아니더라도, 몽니를 부리는 듯한 모습에 기운이 빠진다. 

'패자의 품격'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까. 과거 70~90년대만 해도 품격의 정치가 충만했다. 그러나 요즘 한국경제, 한국문화의 글로벌 위상은 올라가는 데 한국정치는 거꾸로 '야만의 정치'로 향하고 있다. 품격의 정치가 오는 6월1일 지방선거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