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광주 아파트와 함께 무너져 버린 신뢰
[기자수첩] 광주 아파트와 함께 무너져 버린 신뢰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2.01.19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료: 뉴스1

새해를 맞아 건설업계는 일제히 '안전'을 화두로 꺼냈다. 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첫 타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우려에서다. 건설사들은 안전조직을 강화하고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앞다퉈 임명했다. 임원급 안전 전문가에게 독립적인 인사·예산권 등 권한을 부여해 책임을 지움으로써 대형사고를 막겠다는 의도였다. 그런 와중에 새해부터 대형 사고가 터졌다. 다행히(?) 27일로 예정된 중대재해법 이전이었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였다. 게다가 7개월 전 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회사가, 같은 지역에서 사고를 냈다. 10대 건설사 중 7개사가 임명했던 최고안전책임자 역시 따로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정아이파크 사고를 비용절감을 위해 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한 '인재'라고 분석했다.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마친 뒤에는 건물이 하중과 충격을 견뎌낼 수 있도록 제대로 보호관리하는 양생을 일정 기간 해야 안전에 문제가 없는데, 이 기간이 현저히 부족했다는 것. 더욱이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이 기간이 2주는 필요한데도 이번 사고 현장에서는 1주일 안팎 간격밖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타설 하중이 아래층 슬래브 설계 하중을 초과했는데도 일시 철제기둥을 일찍 철거했으며, 래미콘 콘크리트 성분에도 불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쯤되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건설 현장 비리로 얼룩진 후진국형 사고라는 불명예까지 쓴 이번 사건을 놓고 광주 시민을 포함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광주 운암 등 기존 수주 현장에서는 계약 해지 요구가 제기됐고, 이미 준공된 아파트들은 단지명에서 '아이파크' 브랜드를 떼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회사 측이 안전 점검에 문제 있다고 나올 시 수분양자 계약 해지는 물론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고 발표했고,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있다. 사고 실종자 가족들은 "물러날 게 아니라 실질적 사태 해결에 책임을 지고 응당한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격앙된 상태다. 직함만 내려놓고 책임을 피해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완전철거와 재시공 등 내놓은 대책도 '조건부'라는 점을 들어 과연 사태수습과 신뢰회복을 위한 것이 맞냐는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프랑스 작가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Henri-Frédéric Amiel)은 "신뢰는 유리거울 같아 한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회복되기 어렵다. 유리를 녹여낼 만큼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간 아이파크 브랜드에 현대산업개발이 쌓아온 신뢰를 되돌리려면 성난 여론을 성급히 진압하려고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시 쌓아나가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1년 전인 작년 1월 한 브랜드가치연구소 조사에서 아이파크 브랜드 가치는 아파트 브랜드 중 4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만큼 높았던 브랜드 가치를 재건하려면, 사태수습을 넘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전사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처음은 실수지만 단기간 내 사고 재발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회사의 존립이 국민 신뢰회복에 달렸다는 점을 인지했다면,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보여주길 바란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