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상이몽' 탄소중립
[기자수첩] '동상이몽' 탄소중립
  • 이기정 기자
  • 승인 2021.09.27 14: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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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을 둘러싸고 정부와, 산업계, 환경단체가 각기 다른 꿈을 꾸고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안이 지난달 의결된 후 한달이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각층의 의견이 모이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일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환경단체에서는 법안에서 규정하는 감축 기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법적 의무도 없기 때문에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에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당시 충분히 현실을 반영한 목표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환경부는 향후 여러가지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법안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충분한 합의를 거치겠다는 법안은 의결되자마자 반발에 부딪쳤다. 먼저, 환경단체들이 정부의 결정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환경단체들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미 50% 이상의 감축 계획을 밝혔으며, 35%란 수치는 최저치를 간신히 모면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0% 수준까지는 탄소배출 목표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계에서는 곡소리가 나왔다. 산업계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 구조상 법안의 목표치를 맞추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강조하며, 이 수준의 탄소중립을 강행한다면 국내 산업경쟁력 악화 뿐 아니라, 일자리 부족 문제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중립에 산업계가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출 수도 있지만, 이미 탄소중립은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공감하고 준비하고 있는 영역이다. 다만, 정부가 정한 기준은 기업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수 있기에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돌고 돌아 정부는 '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은 알지만, 항상 이 같은 말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보여주기식' 법안을 만들어냈다는 지적도 이해는 간다. 탄소중립 목표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구체적인 달성 방법과 청사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과정에서 여러 목소리를 듣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높은 수준의 탄소중립 목표치를 설정하면서도, 이면에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국경조정제도,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수수료 부과 등 다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물론 국내 산업환경이 선진국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방법을 찾거나, 현실적인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정부가 체면을 위해 이 사실을 받이들이지 못한다면, 영원히 같은 꿈을 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즈트리뷴=이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