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기자수첩]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1.08.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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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프랑스 혁명의 선봉장이었던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아이들이 우유를 마실 수 있도록 우유가격 인하 지시를 내린다. 아이들의 영양보충과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누구도 로베스피에르의 선의의 뜻을 의심치 않았다. 우유 가격은 자연스레 내려갔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우윳값이 내리자 이를 생산하는 소 가격도 같이 하락곡선을 그린 것. 우유가 돈이 되지않자 농민들은 젖소를 내다팔았고, 소고기 가격도 급격히 떨어졌다. 시장에서 젖소가 사라지기 시작하자, 우유공급이 줄었고, 하락하던 우유가격은 급등했다. 결국 우윳값은 로베스피에르가 가격인하를 명하기 전보다 훨씬 비싸졌다. 아이들은 이전보다 우유를 더 마시기 어려워졌다.

의도는 좋았지만 로베스피에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소가 먹는 건초값이 비싼데, 무작정 우유를 싸게 판매하라고 강제한 것은 시장 생태계를 무시한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건초가격을 강제로 내렸지만 원가도 나오지 않자 농민들은 건초를 모두 태워버렸고, 소의 먹이가 없어지자 우유값은 더욱 폭등해 중산층도 사기 어렵게 됐다. '좋은법'이 결국 악법이 돼 목축업 위기를 야기하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 것이다. 서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로베스피에르였지만, 그의 선의가 정책실패의 면죄부가 되지는 못했다. 이 사례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속담으로 자주 언급된다.

최근 여당을 보면 이 일화가 떠오른다.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의 취지는 '가짜뉴스를 척결하고 피해입은 시민을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퍼뜨린 언론에게 엄격히 책임을 묻겠다는 그 선의는 누가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로베스피에르가 지지를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민들에게 장기적으로 큰 효용을 줄 지는 의문이다. 법이 시행되면 비리의혹 보도같은 권력자 주변에 대한 의혹성 보도가 위축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권력자의 과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줄 것이고, 이에 대한 판단 기회도 그만큼 사라진다. 이는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체 사회로보면 막대한 피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을 가짜뉴스로부터 구하겠다는 공의(公意)를 가장한, 의혹을 입막음하려는 사의(私意)가 아닐까는 의심도 생긴다. 실제 보도로 논란이 많았던 정치인들이 이 법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같은 추측이 전혀 일리 없지는 않다. 과거 표현의 자유 등 헌법 수호를 외쳐 온 조국 전 장관은 SNS에서 '언론은 공적 인물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으므로, 공인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부분적 허위가 있었음이 밝혀지더라도 법적 제재가 내려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법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게다가 기준자체가 모호한 이 법은 권력자가 불리할 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해석해 얼마든지 악용될 여지를 안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후퇴하는 흐름이다. 군부독재정권 시절 자유언론 투쟁에 나섰던 원로 해직 언론인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1987년 이후 기나긴 군부독재의 터널을 뚫고 얻어진 언론자유에 심각한 제약과 위축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것임이 명약관화하다"고 했다. 아시아기자협회도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평가하며 "이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실천적 연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촛불 민주주의'로 해외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맞는지 부끄러울 정도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맘껏 언론의 자유를 누리기까지는 수많은 언론인의 희생이 있었다. 현재 집권세력 곳곳에 포진해있는 586민주화 인사들과 함께 투쟁한 언론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결과였다. 세월이 흘러 그 민주화세력이라는 여당이 지난 역사를 잊고 '언론자유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 여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조차 "해직기자들이 참여하는 자유언론실천재단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데 강행처리는 상당히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라며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을 정도다. 더욱이 법안개정 취지대로 일반 국민들의 피해구제에 목적이 있다면, 실제 피해를 일삼는 1인 유튜버 등을 법안에 담는 보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각계 의견조율을 거쳐 건강한 언론법 개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둘러, 무리하게 처리한다면 오히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프랑스에서 폭등한 우윳값처럼 말이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