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폭염속 쪽방촌은 지금..."1평도 안 되는 방, 찬물 끼얹어야 잔다"
[현장 르포] 폭염속 쪽방촌은 지금..."1평도 안 되는 방, 찬물 끼얹어야 잔다"
  • 이서련 기자
  • 승인 2021.07.2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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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쪽방촌의 한 주민이 그늘로 더위를 피하고 있다.ㅣ비즈트리뷴DB

22일 오후 2시 남대문역. 지하철을 타고 갔지만 출구를 나서자마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30여분을 지나자, 휴대폰에는 '휴대전화 온도가 높아 카메라 앱을 사용할 수 없으니 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알람이 떴다. 곧 땀이 비오듯 떨어졌다.

이날 남대문 쪽방촌에는 여러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주민안전 점검'을 위해 쪽방촌을 찾는 날이었다. 건너편에는 대형선풍기를 가동하는 야외 무더위 쉼터가 운영 중이었지만, 주민들은 땡볕에서 직접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택했다.

피켓을 든 쪽방촌 주민.ㅣ비즈트리뷴DB

쪽방촌 주민 A씨는 "지금이 제일 힘들 때"라며 "요새는 너무 뜨거우니까 (공용) 화장실에 가 있거나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차라리 겨울이 낫다. 옷이 두꺼운 걸 입고 있으면 되니까. 특히 요새는 코로나라 어딜 나가지도 못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니 쪄 죽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에어컨을 달면 좋겠는데 몇 만원이나 든다고 한다. 냉장고도 못 놓고. 너무 없으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피켓을 든 쪽방촌 주민.ㅣ비즈트리뷴DB

다른 쪽방촌 주민 B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어커를 끌었는데, 지병이 너무 심해 그만둔 지 꽤 됐다"며 "통풍에, 천식에 너무 버거운데 이 더위에는 더 버티기 힘들다. 병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정말 이제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호소했다.

피켓을 든 쪽방촌 주민. '천막 한 개보다 평수가 넓은 시원한 공간을 주라'라고 쓰여 있다.ㅣ비즈트리뷴DB

서울시에서 쪽방촌 앞에 설치한 무더위 쉼터에 대해선 "실외에서, 그것도 한여름에만 잠깐 해놓는 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달 13일부터 폭염 특별 보호 대책을 가동하고,하고 있다. 남대문과 서울역 인근의 쪽방촌 주민을 위한 무더위쉼터를 13곳 운영 중이다. 이날 남대문 쪽방촌 앞에는 대형선풍기를 가동하는 야외무더위쉼터가 설치됐다.

서울시가 설치한 실외 무더위 쉼터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ㅣ비즈트리뷴DB

한쪽에서는 폭염 속 울분에 찬 일부 주민과 취재진 간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 주민은 현장을 촬영중이던 카메라 기자에게 '찍지 말라'며 마시고 있던 소주병을 던졌고, 어떤 주민은 방호복을 입고 장화를 신은 방역 소방대원들에게 "쪽방촌 온다고 장화를 신고 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다.ㅣ비즈트리뷴DB

오후 2시 반. 오세훈 시장이 도착하자,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피켓을 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이동현 씨는 "남대문 지역 쪽방주민이 516명인데 20명 정원의 무더위 쉼터소는 2개소에 불과하다"며 "집합 시설대책 말고 개별 주거 제공 중심의 '안전숙소'를 확대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이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인 인권 문제"라고 덧붙였다.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이동현 씨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열악한 쪽방촌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ㅣ비즈트리뷴DB

이내 주민들의 거주공간을 방문한 오세훈 시장은 "굉장히 뜨겁다"며 "주로 여기 와 앉아계시냐"고 묻는다. 오 시장은 폭염저감대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소화전용수 살포에도 직접 참여, 거리의 열기를 식히기도 했다.

소화전용수 살포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오세훈 시장.ㅣ비즈트리뷴DB

서울시는 폭염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소방서 등과 협력해 쪽방촌 전 지역에서 소화전 용수를 살포해 온도를 낮추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420개동 주민센터 등 관공서를 무더위 쉼터로 개방하고, 에어컨이 없는 옥탑방 등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안전숙소 37개소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이 한 쪽방촌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ㅣ비즈트리뷴DB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쪽방촌 폭염대책'의 실적은 여의치않다. 서울시는 대표적인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과 중구 양동에 24시간 운영하는 상시 무더위 쉼터 2개를 운영 중이지만, 이달 1∼20일 이용인원은 평균 2.25명에 그쳤다.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한 공간에 여러 주민을 모으는 방식이라 감염병 예방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쪽방촌 실내 모습.

또 일각에서는 이러한 쉼터 자체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2개 쪽방촌에는 약 1300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무더위 쉼터 수용 정원은 41명 수준으로 야외 쉼터를 포함하더라도 전체 인원 대비 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최근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설상가상으로 무더위 쉼터의 수용인원도 더욱 적어진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