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빙하의 장례식...기후변화의 현실을 일깨우다
오크 빙하의 장례식...기후변화의 현실을 일깨우다
  • 이기정 기자
  • 승인 2020.12.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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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아이슬란드 오크 화산 정상에 설치된 '빙하 추모비'ㅣ사진=라이스대학
2019년 8월 아이슬란드 오크 화산 정상에 설치된 '빙하 추모비'ㅣ사진=라이스대학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북동쪽 지역에서 이색 장례식이 열렸다. 사라져가는 빙하를 보내는 장례의식이었다.

사망한 빙하는 700년 동안 화산을 뒤덮고 있던 오크(Ok) 빙하. 이 빙하는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더 이상 빙하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그 규모가 줄어들었다.

전 세계 기후 전문가들과 정치인들, 작가들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키 위해 빙하 장례식을 치렀다. 이 자리에는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도 동참했다. 그는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추모비 문구를 썼다.

기후 변화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흘려듣곤 한다. 우리 삶과 관련된 거대 사건이지만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반응을 잘 보이지 못한다. 인식하기 어려운 범주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복합적인 영향을 끼친다. 앞으로 100년 사이에 지구의 물은 근본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고, 비와 눈이 내리는 패턴도 심각하게 달라질 전망이다. 바닷물은 전에 없이 산성화하며 해수면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상이 인간의 삶에 심각한 여파를 미치게 됨은 물론이다.

마그나손의 저서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이 같은 '이해 불능의 문제'와 '진정한 이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어떤 말과 글로 다가가야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색다른 집필로 책 쓰기에 나섰다.

이를 위해 저자가 구사한 방법은 과학적 태도와 시각을 유지하되 시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인류가 처한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책은 사라진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북유럽 신화 '에다'의 창조 이야기, 인도 신화 '베다' 이야기, 아이슬란드의 근현대사와 사회체제 이야기, 중국과 인도·티베트·히말라야 이야기,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 이야기 등이다.

마그나손은 허구의 이야기와 역사의 이야기를 엮어 인류에게 닥친 위기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인간의 내적 지혜와 동력을 절박하게 주문한다. 더불어 과학자들과의 인터뷰,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 등도 책에 담았다.

"기후변화가 히말라야 산맥과 힌두쿠시 산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말까지 빙하의 30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며 인류가 유엔에서 정한 목표를 달성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를 억제하고 지구온난화를 1.5도 이내 상승을 유지하더라도 빙하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빙하가 이미 유례없는 속도로 후퇴하기 시작했다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지구온난화가 현재의 추세대로 4도 상승까지 진행되지 않도록 조치하지 않는다면 최대 3분의 2의 빙하가 녹을 수 있으며 이는 어마어마한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ㅣ사진=북하우스
시간과 물에 대하여ㅣ사진=북하우스

다음은 저자가 상상하는 지구촌의 암울한 미래다.

"빙하가 하늘 높이 솟았던 자리에는 공기만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손주들은 옛 지도를 보면서 얼음으로 이뤄진 산을 상상하려고 애쓸 것이다. 빙하의 성질을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1000미터 두께의 얼음이 계곡을 전부 채웠다고?"

"인류가 너무 서두른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우리는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며 지구의 한계에 바싹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 80년간 바다의 수소이온농도는 지난 5000만 년보다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수천년간 건재하던 빙하와 영구동토대도 녹아버릴 것으로 전망된다. 전면적 파국을 피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노승영 옮김. 북하우스. 376쪽.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