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②] 은행 일시 혼란..."번거롭지만 금융사고 막겠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②] 은행 일시 혼란..."번거롭지만 금융사고 막겠다"
  • 김민환 기자
  • 승인 2021.03.3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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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지난 25일 본격 시행되면서 금융권이 일시 혼란을 겪고있다.  30일 은행들은 전산시스템 정비 등으로 인해 일부 대출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이 상품들은 모두 약정서 교부를 의무화한 상품들이다. 금소법시행 이전에는 약관이나 상품설명서를 고객에게 보여주면 문제가 없었으나, 이제는 고객이 직접 수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약정서를 고객에게 발송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는대로 상품 재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금소법은 지난 2011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후 9년 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DLF(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이 잇따르면서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금소법의 주요 내용으로는 ▲기능별 규제 체계로의 전환 ▲6대 판매 원칙의 확대 적용 ▲금융소비자에 대한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 보장 ▲분쟁 조정 절차의 실효성 확보 ▲징벌적 과징금을 통한 사후 제재 조치 강화 ▲금융교육의 법제화 등이 있다. 특히, 설명 의무 위반에 따라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고의와 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위법계약해지권은 금융사가 6대 판매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상품 계약일부터 5년 이내 또는 금융사의 위법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금융사에는 관련 상품을 통해 판매한 수익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를 판매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을 수 있다. 청약 철회권은 소비자가 원하면 일정 기간 안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깰 수 있는 권리다. 대출 상품은 14일, 보장성 보험은 15일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금소법 시행에 발맞춰 은행권은 녹취 범위 확대, 불완전판매 분석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그간 금융권에서는 위험성이 높은 투자 상품이나 만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만 녹취상담을 진행했으나,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상품종류와 투자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자동리딩 방식(TTS, 녹음된 기계음)’을 통해 상품 설명 안내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으며, 펀드는 물론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까지 녹취를 의무화했다.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품 판매 시 약관, 상품설명서, 주요 내용 설명서 등 고객에게 교부해야 하는 필수 서류를 소비자 앞 URL로 발송하기 위한 전산시스템개발도 완료했다.

또 불완전판매 여부를 분석하는 금융시스템도 확보된 상태다.

KB국민은행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AI금융상담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AI금융상담시스템에서는 텍스트 데이터를 음성 파일로 변환하는 기술(Text to Speech, TTS)과 음성파일을 텍스트 데이터로 변환하는 기술(Speech to Text, STT)이 활용된다.

국민은행의 AI금융상담시스템의 주요 기능으로는 ▲상품설명에 대한 자동 리딩 ▲투자성향에 적합한 상품 추천 ▲고객 맞춤형 상품설명 ▲상담 시 금칙어 사용 여부 검증 ▲설명 내용 자동 녹취 및 저장 기능 ▲녹취 시간 및 불완전판매 현황 모니터링 ▲주요 불완전판매 유형 분석 등이 있으며 이를 통해 영업점 직원의 금융투자상품 상담을 지원한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시스템은 타 금융회사에서 제공되는 상품 자동설명 기능 이외에도 시장 전망, 적합상품 안내까지 가능하고 AI가 상품 신규 상담내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상담 진행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여부를 자체 점검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상담 과정에 오류가 있으면, AI금융상담시스템이 즉시 직원에게 안내해준다. 신규프로세스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불완전판매를 차단하는 기능은 은행권 최초"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의 'AI 상담 통합 플랫폼'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예적금 만기 ▲대출 연체 ▲각종 사고신고 등 단순업무에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고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한 경우 상담직원에게 연결해 준다. 신한은행도 AI 시스템을 활용해 상품 설명에서의 부족한 부분 등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한 은행 창구 관계자는 "작성해야 할 서류도 많아지고 모든 상품에 관한 설명은 녹취를 해야해서 영업점의 업무량이 상당히 많아져 영업력이 많이 위축됐다"면서 "당국의 결정이고 고객 보호를 위해선 당연한 일이지만 기존에 20~30분에 처리될 일들이 1시간 가량 시간이 소요되면서 직원과 고객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소비자보호...내부통제 만전

최근 은행권은 금소법을 염두에 두고 전사적으로 '고객중심경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룹사 CEO가 주도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 및 내부통제 정책 등 주요 사항을 논의 및 점검하고 예방적 감사기능 도입 등 다양한 정책도입을 추진중에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 17일 조용병 회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등 그룹사 CEO가 참석한 가운데 ‘소비자보호 강화 및 고객중심경영 선포식’을 개최하고, 고객중심경영 실천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초부터 소비자보호그룹을 신설하고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를 임명해 상품 판매 프로세스의 전 과정을 소비자 중심으로 관리중이다. 또 신한금융은 '미스터리 쇼핑(암행 감찰제도)’을 더욱 강화해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영업점에 대해 투자 상품 판매를 제한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도 금소법 시행에 맞춰 이사회 차원에서 소비자보호 현황 점검에 나선다. 하나금융은 지난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소비자리스크관리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을 최종 의결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소비자리스크관리그룹’을 신설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 시니어 변호사와 SC제일은행 리테일금융 법무국 이사 등을 역임한 이인영 변호사를 소비자리스크관리그룹장으로 영입했다. 또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지난 1월 ‘금융소비자 보호 실천 다짐’행사에서 전 직원앞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실천 다짐문 낭독하며, 고객경영중심경영의 의지를 다졌다.

은행들은 최근 임직원 교육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6일 영업점 방문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경험 모바일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대기 시간, 직원 상담 과정 등 전반적인 고객의 의견을 청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민은행은 고객 조사를 통해 고객의 은행 이용 직후 경험을 청취하고, 고객의 소리(VOC)를 통해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금융서비스 개선을 추진한다. 단순한 직원의 서비스 평가가 아닌 영업점에서 실질적으로 고객 경험을 개선할 수 있도록 고객의 불편사항을 찾아내고 보다 나은 영업점 이용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해 6월부터 외부전문가로 구성한 '소비자보호권익강화 자문위원회'도 운영중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22일 금융소비자 보호 실천 다짐 행사를 통해 금소법 시행에 대비해 은행권 최초로 '상품숙지 의무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신규 금융상품에 대한 교육과정 수료 여부를 철저히 검증, 해당 내용을 제대로 숙지한 직원만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나은행 직원들은 교육 영상 등을 시청하고 시행되는 관련 내용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이때 통과한 직원도 일정 기간 해당 상품 판매 이력이 없다면 재평가를 거쳐야 한다.

우리은행은 행내 지식 정보 공유 플랫폼 '위튜브(WeTube)'를 통해 금소법의 주요 내용을 동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전 영업본부와 직할 VG(같이그룹)별 화상 연수를 통해 금소법 시행에 따른 영업현장의 변화 내용을 공유하고 전직원 대상 사이버 연수를 실시해 금소법 주요 내용과 필수 준수사항을 교육중이다.

■ "금소법, 은행에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키움증권은 금소법 시행이 장기적으로는 은행에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은행 입장에서 볼 때 대출, 예금, 금융투자상품 등 거의 전 분야가 금소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은행은 정부의 가이드라인만 맞추면 쉽게 영업했던 과거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접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유예기간으로 1년 이상을 두었음에도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금융당국 역시 금소법에 대한 이해 및 준비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결국 내부 통제와 금융투자자문업자 부문을 6개월 더 연장했지만 정착하는 데 적지않는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배제하더라도 단기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법은 은행업종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먼저 금전신탁, 사모펀드 등 자산관리업 부진, 대출 성장률 둔화 등으로 인해 영업수익이 일정 수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대형 3대 지주사의 자산관리수익은 전체 수정총이익의 5.4%에 달하는데 특히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 자산관리업은 직접투자라는 대체 수단이 존재해 비용 증가를 가격(수수료)에 반영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비용의 가격 전가가 쉽지 않다"면서 "금소법 도입 이후 피해 예방을 위한 내부 통제 비용, 금융서비스 처리에 기간 증가에 따른 인건비 등 금융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판관비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실제 한국과 달리 미국의 경우 더 많은 절차와 서류 제공을 요구하며 이에 따라 모기지 대출이 실행되기 까지 1~3주 이상 소요된다"면서 "만일 금융당국이 기존 규제를 유지함으로써 비용 상승을 가격에 전가하지 못할 경우 수익성은 기대 이하로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금소법 도입 이후 대출 감소 등의 요인으로 인해 자산 시장이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높은 변동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볼 때 은행은 비용 상승요인, 외형 감소 요인에 따른 수익성 감소분을 가격(금리, 수수료)에 반영, 수익을 보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며 "대출금리뿐만 아니라 미국 은행의 송금 수수료, 이체 수수료 등이 한국 은행보다 높은 것도 사실상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발생한 추가 비용 상승분을 기존 고객에게 전가한 것으로 장기적으로는 과거와 달리 은행이 비용 상승 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로 서 연구원은 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은행간 경쟁 강도가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과 규제 방식이 가격(금리, 수수료) 및 대출 한도 규제가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아울러 업종 내에서는 소비자 보호 여력이 많고, 위탁중개 비중이 높은 증권사를 보유한 대형금융지주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앞으로는 소비자보호 여력이 금융회사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반면 채무상환능력이 낮은 고객 비중이 많은 지방은행지주가 시중은행지주보다 타격이 클 수 있다. 지방은행 고객의 평균 DSR이 시중은행 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대출 규제 강화 영향을 상대적으로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비즈트리뷴=김민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