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가 이건희-반도체④] 반도체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
[위대한 기업가 이건희-반도체④] 반도체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
  • 박환의 기자
  • 승인 2020.10.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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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건희 회장 반도체 방문 ㅣ 사진=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974년 파산 직전에 놓여있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해외 기술을 수입해 TV를 조립하던 삼성전자가 돌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하니 글로벌 기업들에겐 비웃음 거리가 되고, 주변에선 온갖 비난을 받았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GDP와 교육 수준이 담보된 국가에서만 감당해낼 수 있는 최첨단 산업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확고했다.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라고 확신했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반도체 사업을 밀고 나갔다. 

반도체에 집념을 가지고 있던 이건희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경련 세미나에서 한 시간가량 반도체의 미래에 대해 출입기자들과 강의 겸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며 “(이 회장은) 게토레이 한 잔을 물컵에 따라놓으시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반도체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며 '난 지금 반도체에 미쳐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서명하는 이건희 회장 ㅣ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으로 우뚝 선 삼성

이병철 선대회장 타계 이후,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반도체 집념'도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 D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번도 세계 1위를 내주지 않았다. 1994년에는 세계 최초 256Mb D램 개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 10월 닷컴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D램 시장에 전례없는 불황이 닥쳐왔다. 64메가 당 20달러에 이르던 D램의 가격이 2001년 2월 3.8달러까지 하락했다.

이 시기에 각 기업들은 300mm 웨이퍼 공장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장 전환에 수조원의 장비가 투입되는데 불황의 시기가 겹쳐 각 기업들은 주저했다.

삼성을 뒤쫓던 일본의 엘피다는 "300mm로의 전환을 9개월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2001년 10월부터 300mm 웨이퍼를 기반으로 하는 신형 120나노 기반 D램 양산을 시작했다.

후에 일본의 엘피다도 300mm 레이스에 뛰어들었지만, 이 기간 동안 이미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해 경쟁업체가 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 글로벌 업계 1위로 추격자들 대비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2분기 기준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 시장 43.5%, 낸드플래시 31.4%를 점유하고 있다. 1980년대 70%를 넘었던 일본의 D램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분기 기준 한국이 73.6%를 차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취임했을 당시 10조원이었던 삼성전자 매출액은 지난해 230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27조77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반도체에서만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14조으로 전체 절반쯤 된다.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시작한 반도체 사업은 현재까지 삼성의 최대 수익원이 됐다.

 

[비즈트리뷴=박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