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헬기, 왜 안쓰지?-중] 정부기관의 ‘국산헬기’ 역차별 논란...왜?
[국산헬기, 왜 안쓰지?-중] 정부기관의 ‘국산헬기’ 역차별 논란...왜?
  • 이기정 기자
  • 승인 2020.08.25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KAI
사진=KAI

1호 ‘국산헬기’ 수리온의 성장에 예상치 못한 제동이 걸렸다. KAI가 최근 진행된 중앙119구조본부의 헬기 입찰을 포기한데 이어, 이달 진행 중인 전북소방지부의 헬기 공모에서도 입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민간이 항공산업 진흥을 위해 거금을 들여 개발에 성공했지만, 국내 기관에서는 외면하는 모양세다. 특히, 업계에서 수리온이 임무에 필요한 안정성과 기술력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더욱 아쉬움이 크다. 다행히 방산청과 경찰청 등에서 국산헬기 활용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 내수에서부터 활용성이 낮아 고심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편집자주]

소방청의 헬기 입찰 공고가 나올 때마다 외산헬기를 선호한다는 논란은 반복돼왔다. 

항공업계에서는 시작점에서부터 외산헬기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돼 국산헬기가 입찰 자체에 뛰어들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소방청에서는 국산헬기를 차별하려는 것이 아닌, 필요에 의한 규격을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 KAI, 중구본 입찰 포기...전북소방도 어려울 듯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KAI는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의 헬기 2대 입찰을 포기했다. 중앙119구조본부가 입찰에서 정한 최대 이륙 중량 6400kg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 이에 따라 이번 입찰에서는 이탈리아 업체인 레오나르도 1곳만 참여하게 됐다. 

이번에 중앙119구조본부에서 제시한 최대 이륙 중량은 응찰사인 레오나르도 중형 헬기 ‘AW139’의 제원과 일치한다. 반면, 국산헬기 수리온은 중량이 8700kg으로 AS139를 훨씬 웃돈다. 이렇게 되면 응찰 과정에서 체급이 크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더불어 현재 입찰이 진행중인 전북소방본부의 헬기 입찰에서도 수리온은 사실상 경쟁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북소방본부가 최대 항속거리를 700km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현재 수리온의 최대 항속거리는 680km다. 

이번 입찰 방식을 두고 소방청은 또 한번 ‘불공정하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앞서 항공업계는 지난달 외산과 공정한 경쟁을 치루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중앙119구조본부 등을 포함해 각 지역 소방청 헬기 입찰에서 수리온이 배제되고 있다는 것. 실제 지금까지 소방청에서 입찰한 국내헬기는 제주도 경상남도 소방청 단 2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업계 관계자들은 입찰 과정에서 ‘특수성’이 반영됐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해석한다. 제주도는 외산 헬기 경험이 없어 차별 여지가 적었고, 경남 사천에 KAI 본사가 위치하기 때문이다. 실제 경남도 입찰에는 김경수 경남도시자사 직접 나서 수리온 구매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각 시도에서 관용헬기 도입 또는 낡은 헬기를 교체할 경우 KAI가 생산하는 수리온을 구매해달라”며 국산헬기 사용을 호소했다.

한라매ㅣ사진=KAI
한라매ㅣ사진=KAI

■ “국산헬기도 충분히 고려” VS “이해할 수 없다”

소방청에서는 헬기 입찰 시 모든 제품을 공동선에 두고, 소방청 관계자와 관련 전문가들이 고심해 내린 결론이라는 입장이다. 현장에서 필요한 규격이 수리온과는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실제 앞서 중구본의 헬기 입찰과정에서도 굳이 중량이 더 큰 헬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입찰 과정에서도 소방청에서 만든 기본규격에 의거했고, 소방청에서 사용하는 헬기는 군 등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목적성이 다르다는 점도 근거다. 

특히, 수리온은 ‘군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조를 한다고 해도, 소방청의 목적과는 적합성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민수헬기 인증서가 없어, 지자체 소방본부가 필요로 하는 ‘형식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는 점도 이유다.

이와 함께, 외산 헬기를 오랜시간 사용해 이에 익숙하다는 점과, 아직 수리온에 대한 검증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도 반영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방청 관계자는 “굳이 국산 헬기를 입찰 과정에서부터 배제할 이유가 없다”며 “청 내에서도 입찰을 위해 규격과 목적성 등을 두고 오랜시간 토의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항공업계에서는 소방청의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 사용하기에는 수리온의 제원들이 충분할 뿐 아니라, 군에서 이미 안정성과 기술력 등이 입증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수리온은 군용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지자체 소방본부가 요구하는 ‘형식증명서’는 없지만, 방위사업청의 인증을 받았다. 

항공업계의 주장에 납품된 국산헬기가 무난한 임무수행을 하고 있는 점도 힘을 보탠다. 현장에 투입된 제주 소방헬기 한라매가 지난 2018년 납품 이후 문제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제주대학병원에서 부산 동아대병원까지 293km 거리를 환자를 태우고 성공적으로 이동했다. 이외에도 육군과 경찰청 역시 사고 없이 수리온을 운영 중에 있다.

아울러 항공업계는 소방청이 외산 헬기와 비교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입찰 자체에 참여하기 어렵게 규격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소방헬기 기본규격은 최대항속거리 500km 이상, 최대이륙중량 4300kg이지만, 지자체 소방본부에서 수리온의 규격을 벗어나는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애국심에 기대서 국산헬기를 무조건 사용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정한 방식에서 경쟁을 진행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비즈트리뷴=이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