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삼성 준법감시위'...이재용 재판, 어떤 변수될까
[이슈분석] '삼성 준법감시위'...이재용 재판, 어떤 변수될까
  • 윤소진 기자
  • 승인 2020.01.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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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ㅣ SBS 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ㅣ SBS 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감시위)가 다음 달 공식 출범한다. 감시위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경영진 전반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삼성의 형량 낮추기를 위한 '꼼수'로, 또 다른 시각으로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절차'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지난 9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1차 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 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건은 총수와 최고위 임원들이 계획적으로 가담한 뇌물 범죄다. 재발 방지를 위해 실효적인 준법 감시제도가 필요하다"며 피고인을 향해 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했다. 이어 "삼성 내부 총수들도 두려워할 제도가 있었다면 범죄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제시했다. 
 
■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양형 사유로 고려될까
 
지난 17일 열린 4차 공판에서는 재판부는 "기업 범죄 재판에서 준법감시제도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며, "준법감시제도가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를 점검·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은 이미 2011년부터 지금까지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해오고 있어, 새로운 위원회 설립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기존에 운영되던 별도의 준법감시 조직은 50여 명의 직원으로 운영됐으나 제한적 역할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삼성 법무실 하부조직으로 사실상 경영진과 분리돼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업무도 일부 사업의 '사후 점검'에 국한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검은 이날 재판부의 주문에 즉각 반발하며 "대통령과 최고 재벌총수 간의 사건에 준법감시제도 수립이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삼성과 같은 거대 조직이 없는 미국의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극히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기일을 2월 14일로 지정하고 그때까지 관련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삼성 측은 재판부의 주문에 따라 독립성을 보장하고 전문성을 고려한 새로운 감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면서 기업 차원의 신뢰 회복에 본격 나서고 있다. 
 
미국의 연방법원양형기준 제8장은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언급한 미국의 양형 기준을 이 부회장의 재판에 적용해 양형 사유로 반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재판부가 예로 든 기업내부통제수단은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에 근거한 것으로, 이 조항은 CEO나 기업 임원 등 개인 범죄가 아닌 회사 법인 처벌 시에 고려되는 사항이라는 해석이다.
 
특이 이 조항은 미국이 기업 범죄를 형벌부과만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내놓은 유인책의 하나로, 기업이 '법 위반을 예방하고 감지할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입증되면 벌금 등을 깎아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경제계 전문가는 "미국에서 이 조항을 언급해 개인 기업범죄자의 양형 사유로 고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기업 범죄는 내부통제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재판부가 이러한 기업의 형량을 감경해주는 것이다"며 "이번 삼성의 경우처럼 이미 범죄 행위가 이뤄진 이후에 준법감시제도를 갖추는 경우에는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1991년 이후 미국의 기업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보고있다.  삼성이 준법감시제도를 내부적으로 원활히 운영한다면 앞으로 미국처럼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도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않다. 
 
법조계의 한 전문가는 "재판부가 요구한 내용에 답변했다고 반드시 양형기준에 고려되거나 감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향후 재판부의 종합적인 판단에 하나의 참고사항이 되는 것일 뿐, 미국의 경우처럼 구체적인 시스템을 요구하고 감시 기준을 평가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새로운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어떻게 구성되나
 
삼성 준법감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ㅣ SBS 뉴스
삼성 준법감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ㅣ SBS 뉴스
삼성은 향후 신설되는 준법감시위원회는 외부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경영진과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민감한 영업비밀이나 내부정보를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에 모두 제공되는지, 계열사별로 다른 사업내용에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삼성에 따르면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사회와 관계없이 내부경영과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 운영된다. 감시위는 그룹 계열사 전반의 준법경영 시스템을 관리 감독하게 될 전망이다.
 
초대 준법감시위원장에는 김지형 전 대법관이 내정됐다. 김 전 대법관은 김영란 전 대법관과 함께 법조계에서 진보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감시위는 김 전 대법관을 필두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으로 구성됐다.
 
김지형 위원장은 "위원회 구성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다"며 "6명의 내정자 전원을 독자적으로 판단해 참여를 권유했다"고 했다. 이어 "계열사의 주요 의결사항에 법 위반 리스크가 없는지 사전 모니터하고 사후에도 검토할 것이다"며 "최고 경영진의 위반행위에 대해선 위원회가 직접 조사하거나 신고받는 체계도 만들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삼성 최고경영진의 진의를 믿고 싶지만, 완전한 확증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 "신뢰는 처음부터 존재하기 어렵다.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고 쌓아나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삼성의 준법감시위 출범으로 과연 김 위원장의 말처럼 감시위가 독립성을 보장받고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신뢰받는 단체로 운영될 수 있을지, 또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형량을 낮추는 묘책으로 기능할지, 재계는 물론 법조계가 주목하고 있다.  
 
[비즈트리뷴=윤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