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과 입법 의견
낙태죄,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과 입법 의견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9.12.07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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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19. 4. 11. 2017헌바127
헌법불합치, 잠정 적용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지난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렸다.
지난 4월 1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선고가 열렸다.

[비즈트리뷴=박병욱 기자] 낙태와 관련해 우리 법체계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과 위법성 조각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으로 이원화돼 있다. ‘형법’은 제27장 낙태의 죄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면서, ‘모자보건법’을 통해 일정한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적응사유 등이 있는 경우 형법상의 낙태죄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낙태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치열한 찬반 논쟁을 거쳐 도입됐다. 이후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수정이 있었으나, 실질적인 조문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모자보건법’은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1973년 비상국무회의에서 제정됐다. 당시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의 제정이 가능했던 것은 유신 정권이 어떠한 이견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지금까지 일부 수정만을 거치며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낙태죄 찬반 논거들도 형법 제정 당시와 큰 차이 없이 그대로 평행선을 달려왔다.

그러나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가 낙태죄 존폐론의 평행선에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이 헌재 결정은 2019년 선고된 가장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로 여러 전문가의 견해를 이와 함께 소개한다.

◇ 사건의 개요

A는 산부인과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으로,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업무상승낙낙태) 등으로 기소됐다. A는 제1심 재판 계속 중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 제270조 제1항(의사낙태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그 신청이 기각됐다. 이에 위 조항들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 헌법재판소의 판단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태아는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편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해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결정가능기간)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하가 임신종결 여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낙태갈등 상황에 처한 여성은 형벌의 위하로 말미암아 임신의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필요한 사회적 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된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자기낙태죄 조항과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봐야 한다.

◇ 외국의 입법례

일정한 요건을 갖춘 낙태를 비범죄화한 대륙법계 유럽 대다수 나라는 ‘기간 방식’과 ‘적응사유 방식’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간 방식은 대체로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이내의 일정한 요건을 갖춘 낙태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영국은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24주 이내의 일정한 요건을 갖춘 낙태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미국은 주(州)별로 규제가 다르고,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의 취지에 따라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viability)을 갖추기 전의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요건을 갖춘 낙태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주들이 있다. 

국제연합(UN)이 이른바 선진국 권역(Developed Regions)으로 분류하는 유럽 전 지역, 북미, 호주, 뉴질랜드, 일본에서의 각 사유별 낙태 허용 국가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2013년을 기준으로 ‘임신한 여성의 생명 구조’는 96%,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건강 보호’는 88%, ‘임신한 여성의 정신적 건강 보호’, ‘강간 또는 근친상간’ 및 ‘태아의 장애’는 각각 86%,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82%, ‘임신한 여성의 요청’은 71%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1996년과 비교해 위 일곱 가지 사유 중 여섯 가지 사유에서 낙태 허용국가의 비율이 상승한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 사유인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건강 보호’에서는 그 비율이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다.

국제연합이 이른바 개발도상국 권역(Developing Regions)으로 분류한 나머지 국가들에서도 위 일곱 가지 사유 중 여섯 가지 사유에서 낙태 허용국가의 비율이 상승했고, 한 가지 사유인 ‘임신한 여성의 생명 구조’에서만 그 비율이 소폭 감소했다고 한다.

◇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

헌재는 낙태죄 조항에 대한 2012년 결정에서 합헌 결정을 했다(2010헌바402). 그러나 2019년 견해를 달리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재의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출산 여부를 결정할 권리도 포함된다. ▲인간생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보호를 달리하는 것은 가능하다.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임신 22주)가 보호의 정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태아의 착상 시부터 독자적 생존가능시기(결정가능기간)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해 낙태갈등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에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 ▲낙태죄 조항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입법자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을 해야 한다. 입법자는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함해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해 헌재가 제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재량을 가진다.

이 헌재 결정은 낙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있어서 방향 제시를 했다고 평가된다.

# 하지만 헌재 결정과 관련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전상현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대상결정의 헌법불합치의견은 스스로 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을 부인하고 그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했음에도, 단순위헌결정으로는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돼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긴다고 한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헌법불합치 결정이 위헌 결정의 효력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른바 법률의 흠결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예외적인 주문임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구체적 검토 없이 헌법불합치 주문을 남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대상결정에서는 위헌의 영역을 특정해(예컨대, 독자적 생존가능시기) 한정위헌을 선고하거나, 위헌 영역을 특정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단순위헌을 선고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성욱 변호사(법무법인 휘명)는 낙태죄 조항이 위헌인 이유 또는 그 범위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대해 예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일정한 규율영역으로 확정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이는 입법자에게 명확한 입법지침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한편 낙태죄 개정을 위한 구체적인 법제 정비 방안을 제시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신옥주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자기결정권을 실질화하기 위한 상담 제공의 방법을 강조했다. "여성의 임신 중절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나라에서 임신 중절 전 상담은 필수적"이라고 하면서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상담시스템을 구축하고 임신, 출산, 입양, 양육에 대한 실질적 정보를 제공하며 결말이 열린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임신 중절을 하지 않고 출산을 결정하는 경우를 위해 제한적 익명출산제도, 즉 일정 기간까지만 산모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보장되는 출산제도의 도입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의료인의 양심적 진료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주대 의대 김지민 연구강사와 이미진 강의교수는 “보건의료인은 태아와 산모의 생명을 모두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를 지켜왔는데, 헌재 결정으로 인한 현 상황은 보건의료인의 책임, 의무 및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보건의료인에게 요구되는 낙태 시술 행위는 보건의료인 개개인이 고수해오던 신념, 가치 그리고 양심을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보건의료인의 양심을 기반으로 한 낙태시술거부권을 법적으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며 “보건의료인의 양심에 의한 낙태 시술 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는 외국의 입법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낙태 관련 규정의 개정 시 고려해야 할 구체적인 항목으로는 낙태 시술 거부권의 대상, 진료 거부 범위, 거부 권리 절차, 거부권이 제한되는 경우, 관리 감독 여부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형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지 66년 만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임신중단을 둘러싼 법제의 정비가 이뤄지게 됐다. 입법부는 확실한 중심을 잡고, 다양하고 지속적인 토론회·공청회·학술대회·여론조사 등을 개최함으로써 각계각층의 견해가 모일 수 있도록 의견 수렴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다해야 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 2019.4.11.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 2019.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