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파기환송심서 이재용 훈계한 재판장 발언의 의미는
[이슈분석] 파기환송심서 이재용 훈계한 재판장 발언의 의미는
  • 이연춘
  • 승인 2019.10.2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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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독일·프랑스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냐"

지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번째 파기환송심 재판에 삼성 안팎의 눈과 귀과 모아졌다.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 재판장이 이례적인 당부의 말과 함께 이례적으로 삼성 경영을 비판하는 발언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 부회장이 법정에 나온 것은 지난해 2월 5일 항소심 선고 이후 627일 만이다.

이날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은 35분 만에 끝났지만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52·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이 부회장을 향해 운을 뗐다.

 

사지=연합뉴스
사지=연합뉴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라고 정의했다.

그는 "삼성 쪽에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 감시제도가 필요하다"며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 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최순실)씨도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같은 범죄가 재발될 수 있다"며 "준법감시제도는 고위직 임원과 기업 총수의 비리 행위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 대기업들의 제도를 참고하라"고 덧붙였다.

재계 일각에선 재판부의 강도 높은 꾸짖음에도 '기업 총수로서 할 일을 해달라'는 당부는 삼'집행유예' 판결의 무게를 싣는 분위기로 해석된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언급한 것 역시 삼성의 과거 잘못된 관행을 고쳐 나가라는 뜻에서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란 분석이다.

이 부회장 사건의 경우 정상참작 사유가 상당해 재판부의 작량감경 가능성도 점쳐진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이 정경유착의 전형이 아니라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수동적 뇌물 사건'이며 이 부회장 등이 뇌물제공의 대가로 특혜나 이익을 얻은 것이 없다고 판단해 작량감경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도, 항소심에서 대통령에게 면세점 특허를 청탁하고 그 대가로 70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점과 롯데를 경영하면서 상당한 금액을 횡령·배임한 점이 모두 유죄로 인정됐지만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수동적 뇌물 공여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법원에 출석하며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죄송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