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합 "혼인 중 출산 자녀, 유전자 달라도 법적으로 친자식"
대법 전합 "혼인 중 출산 자녀, 유전자 달라도 법적으로 친자식"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9.10.24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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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판례 유지
'타인 정자 인공수정' 자녀도 친생추정..."가족제도 유지 위해 필요"
"혈연만 기준으로 친생추정 적용범위 정할 순 없어"
23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19.10.23. / 사진=연합뉴스
23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비즈트리뷴=박병욱 기자] 다른 사람 정자로 인공수정(AID)해 낳은 자녀라도 남편이 동의했다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되고, 혼인 중 출산한 자녀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자관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2016므○○○○)이 나왔다.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범위를 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는 부부가 동거하지 않아 처가 남편의 자녀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 한해 민법 제844조의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는 36년 전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아버지는 유전자가 다른 것이 확인된 자식을 상대로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친생 부인(否認)의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A가 자녀들을 상대로 제기한 ‘친생관계 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유전자 검사에서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 추정 원칙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된다"면서 "혼인 중 아내가 출산한 자녀가 유전자 검사로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친생자 추정 원칙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이라며 "혈연관계의 존부를 기준으로 그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런 판단이 가족제도를 보호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고도 밝혔다.

재판부는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된다"며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 같은 판단은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을 때 생긴 자녀만을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로 인정한 기존 판례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83년 판결에서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한 경우에만 친생자 추정이 깨질 수 있다'며 예외사유를 좁게 인정한 바 있다.

기존 판례를 유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법조계는 기존 판례를 변경한다는 구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은 만큼 '판례유지'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인공수정'처럼 다른 사람의 정자로 임신·출산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844조와 제847조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이 추정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친생부인의 소를 인정하고 있다.
 
친생부인의 소는 남편 또는 아내가 다른 일방 또는 자녀를 상대로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이를 제기해야만 한다. 제소기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친생 추정을 받는 자녀에 대해서는 친생자 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친생자 관계는 그대로 확정된다.

A는 부인 B와 1985년 결혼했지만 무정자증으로 자녀가 생기지 않았다. 이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을 통해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는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하고 이번에도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A는 2014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이에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 검사 결과 두 자녀 모두 A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1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두 자녀 모두 "친생추정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친생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둘째 아이의 경우처럼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도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친생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유효한 양친자관계가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과 달리 친생추정의 예외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원고 패소'라는 재판 결과가 2심과 같아 '2심 재판을 다시 하라'는 파기환송이 아닌 원심 판결을 유지하는 상고기각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친생추정 예외 범위를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각계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5월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을 통해 인공수정 자녀의 신분관계 역시 다른 친생자와 마찬가지로 조속히 확정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임신ㆍ출산의 모습을 둘러싼 친자관계 및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을 확보했다”며, “오랜 기간 유지된 가족관계에 대한 신뢰보호 필요성,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 보장,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범위를 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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