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고성난무했던 '펙사벡' 현장...신라젠 '기로에 서다'
[기자들의 팩자타] 고성난무했던 '펙사벡' 현장...신라젠 '기로에 서다'
  • 전지현
  • 승인 2019.08.06 16: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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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투자자들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매도를 하든지 매수를 해야하는데 투자자 의견을 안들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투자자 의견이 중요하지 않은가", "핵심에서 벗어난 기자들 질문이 많다. 기자들 질문에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CCMC에서 진행된 신라젠의 기자 및 애널리스트 대상 긴급간담회 자리에 함께 참석한 상당수 주주들의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종일관 격앙된 모습을 보였죠.

문은상 신라젠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CCMC에서 긴급간담회를 갖고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사진=전지현 비즈트리뷴 기자.
문은상 신라젠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CCMC에서 긴급간담회를 갖고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사진=전지현 비즈트리뷴 기자.

지난 2일 '꿈의 항암제'로 여겨지던 '펙사벡'이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 임상 3상 중단 권고로 인해 주말 이후 시작될 주식 장에서 본인들의 주식에 대해 매도 혹은 매수에 나설지 '피말리는 결정'을 위해서였습니다.

주주들끼리의 설전과 언론을 향한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나이 들었으면 나이값좀 해라. 매너없이 질문을 해대냐", "000내보내라, XX새끼들. 회사를 씹어도 어느정도 씹어야지. 이 XX놈들아."

신라젠은 지난 2일 DMC 임상 3상 중단 권고 이후 맥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3조원을 육박하던 기업가치는 6일 종가 기준 1조871억원으로 2조원 가량 증발되면서 코스닥 시총 2~3위에서 13위까지 밀렸고, 4~5만원을 웃돌던 1주당 주가는 현재 1만53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한국의 대표 바이오기업이자 코스닥 대장주였던 신라젠 주주들이 예민하고 격양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죠.

◆'꿈의 항암제' 펙사벡으로 13년새 韓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우뚝 선 신라젠

신라젠은 항암 바이러스 면역치료제(Oncolytic Virus Immunotherapy)를 연구 및 개발할 목적으로 2006년 3월에 설립된 바이오 벤처기업입니다. 당초 부산대 의대 연구진이 임상시험을 위해 설립한 산학협력 기반 바이오벤처였으나 현재 직원수 68명의 중소기업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표=신라젠 분기 보고서 중 발췌.
표=신라젠 분기 보고서 중 발췌.

이 회사 최대주주인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러시아 모스크바 제1의과대학에서 두경부외과를 전공하고 수련의(인턴) 과정을 마쳤습니다. 모스크바 의대생 시절부터 바이러스 활용 면역요법에 관심이 많았던 문 대표는 귀국후 부산대학교 병리학교실 교수로 근무합니다.

당시 펙사벡 논문을 접하고 의과대 교수들과 함께 제네릭스에 200만 달러를 투자, 2013년 말 신라젠 대표에 선임돼 제네릭스 인수를 주도했습니다. 제네릭스는 신라젠을 통해 펙사벡 개발을 하던 미국 생명공학회사였죠.

신라젠 성장 기반에는 '꿈의 항암제'로 불리던 '펙사벡'이 있었습니다.

신라젠은 개발중인 항암제는 암 치료를 목적으로 유전자를 재조합한 항암 바이러스가 몸 속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감염시키고, 바이러스가 감염된 암세포를 파괴하는 동시에 우리 몸안의 면역체계를 일깨워 면역체계 스스로 암을 치료하도록 유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펙사벡은 유전자 재조합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이용해 개발중인 항암제로, 첫째 직접적인 암세포의 용해(사멸), 둘째 적응 면역반응 촉진을 통한 면역치료, 셋째 암세포 혈관의 폐쇄를 통한 종양의 사멸이라는 세가지 작용기전을 보이는 항암 바이러스 면역치료제였죠.

특히, 항암제는 신약개발 성공확률 및 개발비용 측면 등에서 타 약물대비 개발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약이 임상 1상을 진입한 뒤 시판승인에 이를 확률은 평균적으로 10%이내. 그 중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17%, 내분비질환은 13% 수준인데 반해 항암제는 7% 수준으로 전체 분야에서 가장 낮은 성공확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비용도 엄청납니다. 2013년 기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에서 전체 질환 평균적인 환자 1명당 임상시험 비용은 3만6500달러이나 항암제 임상시험의 경우 전체 질환 중 가장 높은 5만9500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죠.

때문에 신라젠은 항암제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로 지난 2016년 적자상태에서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 연초까지만해도 코스닥 시총 2~3위를 오르내리던 회사로 성장합니다.

◆'시장가치' 사라진 꿈의 신약,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의한 좌절?

신라젠에 위기가 몰려온 것은 지난 2015년 4월 미국 FDA로부터 선도물질인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시험 허가를 받아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을 진행중이던 '펙사벡'이 임상중단 권고 조치 때문이었습니다. 신라젠은 미국, 한국, 중국, 유럽 등 20여개 국가에서 진행성 간암환자 약 600여명을 대상으로 임상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는 올해 상반기 `펙사벡` 임상3상의 무용성 진행 평가를 발표할 예정이었죠. 무용성 진행 평가는 개발중인 의약품이 치료제로 가치가 있는지 따져 임상시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인데, 결국 지난 1일(현지시간) 신라젠에 '시장가치 없음'을 통보한 셈입니다.

문 대표는 지난 4일 가진 긴급 간담회 자리에서 "금요일 새벽 1시 구두통보 받은 것을 장 시작 전에 공시함으로써 추가적인 주주 피해를 바로 차단했다"며  "당사 임직원은 무용성 평가 통과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접하게 돼 고통스러웠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신라젠이 DMC 권고를 받아들여 간암 임상시험을 조기 종료키로했지만, 문 대표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습니다. 신라젠의 DMC 무용성 평가에는 유럽 의사 3명과 생물 통계학자 1명으로 총 4명이 참여했습니다.

문 대표는 "안전성 이슈를 보는 DMC에서 안전성 이슈가 없는데 왜 중단하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의사 3명은 소화계암을 보는 이들로 알고 있다"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월등히 뛰어나지 않는 약효를 갖고는 거대 제약회사와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레귤레이션(규제)을 한번에 뒤집기 힘들단 생각이나 검증된 바는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 신라젠은 DMC(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로부터 ‘펙사벡’ 간암 임상 3상 중단 권고를 받기 전까지 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FDA의 지시대로 무용성 평가를 진행했고, 중단 권고를 받고 하루가 지나서야 구체적인 데이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신라젠은 6일 최근 무용성평가 결과에서 펙사벡의 간암 임상3상 중단을 권고받은 이유에 대해 임상 참여자들 중 35%가 임상 약물 외에도 다른 약물을 투여 받은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구제요법이 임상의 데이터에 합산이 되면서, 대조군이 실험군보다 비율이 높아 '펙사벡' 효과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제요법'은 임상 과정에서 임상용 약물로 1차 치료 반응이 없을 때 경제력이나 보험급여 여부, 환자의 후속 치료 의지 등을 담당 의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합한 다른 약제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 임상수탁기관이 보내온 1차 데이터에 따르면 393명 중 총 203명이 모집된 실험군(펙사벡+넥사바) 가운데 63명(31%)이 구제요법으로 다른 약물을 추가 투여받았고, 190명이 모집된 대조군(넥사바) 중 76명(40%)이 다른 약을 투여받았습니다.

권혁찬 신라젠 임상총괄 전무는 “임상 3상에서 다른 약을 추가 투여한 구제요법이 시험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하며 펙사벡의 약효 문제는 아닐 것으로 조심스레 예측한다”며 "앞으로 다른 분석이 필요하지만 양쪽 군이 비슷한 비율로 추가 약물을 투여받았다면 무용성평가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속되는 대주주 '엑시트', 잃어버린 시장 신뢰 되찾을까

상황은 이렇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합니다. 6일 신라젠은 전일 대비 29.98% 하락한 1만5300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이는 펙사벡 임상 3상 중단 권고 발표가 있기 전일 8월1일 종가 4만4550원과 비교하면 3거래일만에 풀썩 주저앉은 수준입니다. 더욱이 3월 초 7만8500원(3월5일)까지 올라갔던 것과 비교하면 1/7 수준으로 고꾸라졌죠.

회사 측의 '펙사벡' 약효에 대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서 신뢰성을 잃는 데는 앞선 신라젠의 대주주 지분 매각과 맥을 같이 하는 듯 여겨집니다.

신라젠 신사업 추진 담당 신현필 전무는 지난 7월1일부터 8일까지 총 4회에 걸쳐 보통주 16만7777주를 약 88억원에 장내 매도하면서 '발빼기' 논란 중심에 섰습니다. 신 전무는 문 대표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죠.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라젠이 개발 중인 항암제 펙사벡의 임상 3상 결과를 미리 인지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회사측 임원들은 이 같은 의혹에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송명석 신라젠 부사장은 "알고 팔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로, 개인의 일탈로 보고 권고사직을 진행하고 있다"며 "지분 매각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회사가 임상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 도덕적으로눈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표 역시 "긴박한 상황속에서 회사를 빨리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지분 매입하라면 자금을 빌려와서라도 추가지분을 매입하겠다"며 "끝까지 남아 이 약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이들의 약속과 설명에도 신라젠의 잃어버린 신뢰는 문 대표의 지분 매각도 한몫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지난해 문 대표를 비롯해 그의 친인척 문상훈, 임수정, 조경래, 곽병학 등 4명은 지분을 다량 매각했습니다. 이로인해 2016년 초 22%에 달했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은 4년 연속 줄면서 현재 8.7%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이를 염두한 듯 지난 4일 간담회 자리에서 한 주주는 문 대표를 향해 "향후 지분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문 대표는 "공시를 통해 알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매도 가능성의 문을 열어 놓기도 했습니다.

다만, 문 대표는 이 질문의 답에 앞서 매각 배경으로 세금 및 부채에 관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죠. 문 대표는 "최대주주 3인은 세금과 부채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수백억 세금을 내지 못해 의사 및 주주 들에게 빌려 연부 연납으로 내고 있다"며 "추가 지분 매입을 해줬으면 좋겠다 메일과 문자를 많이 받았다. (현 난관 타개를 위해) 추가 지분 매입 계획이 있고, 여기에 힘을 보탤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신라젠의 미래, 그리고 새로운 희망

"작년 5월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졌다. 응급실에서의 초기진단은 안구적출과 3개월 시한부 선고. 20시간 이상의 6번 수술과 신장 기능 정지로 죽음 직전까지 경험했다. 한쪽 눈이 실명, 세상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펙사벡 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가족을 암으로 잃었던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졌는데 현재는 내가 치료할수 없는 병을 겪는 환자가 됐다. 괴로움으로 생을 끊내고 싶은 충동과 매일 싸우며 1년 반을 버텼다. 환자로서 신약 개발의 완성을 꼭 보고 싶다."

문 대표가 지난 4일 기자, 애널리스트, 그리고 주주들 앞에서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밝힌 말입니다. 비록 상업화를 코앞에 둔 '펙사벡' 간암 시험은 종료했지만, 항암 능력을 믿고 펙사벡을 기반으로 파생한 남은 신규 라인, 즉 신규 면역관문억제제 등 병용 임상에 집중해 승부를 볼 것임을 자신했습니다.

표=신라젠 홈페이지.
표=신라젠 홈페이지.

문 대표는 “지금도 펙사벡의 항암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며 “글로벌 임상 3상에 예정 돼 있던 잔여 예산을 신규 면역항암제 병용 임상 및 술전요법에 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임상 데이터가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는대로 기술수출(라이센스 아웃)을 진행할 것"이라며 "간암의 결과와 무관하게 타 적응증 병용임상 효능 데이터만 우승하면 기술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희망을 내보이기도 했죠.

실제 신라젠은 간암 외 신장암, 대장암, 유방암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수술전에 보조용법으로 사용하는 펙사벡 실전요법에 대한 임상을 호주 대학병원, 국내 대학병원에서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송명석 신라젠 부사장은 "1번째 신장암 미국 한국 호주에서 진행중에 있고 2번째 대장암은 미국에서 진행중, 세번째 유방암과 4번쨰 소화계암은 국내에서 시작하고 어느정도 효과를 보면 미국까지 확장할 계획"이라고 전했죠.

분명한 것은 신라젠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남은 상황도 녹록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회사는 펙사벡 효능을 자신하지만, 남은 파이프라인은 펙사벡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추가 성공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임상 3상 성공률 0.02%. 현재 국내 바이오업계는 연거푸 발생한 악재로 적신호가 켜져 있습니다. 바이오업계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습니다. 신라젠이 펙사벡을 자신하는 만큼, 또, 지난 13년간 지켜온 성공을 재현해 국내 바이오업계 신약 개발 능력의 희망의 불을 다시 켜주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