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피보다 진한 상속의 경제학…한진그룹 운명은?
[기자들의 팩자타] 피보다 진한 상속의 경제학…한진그룹 운명은?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5.20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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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바라보는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국내에서 경영권 분쟁이라면 공격적 인수합병(M&A)보다는 혈연간 이뤄지는 상속분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독 국내에서 피의 무게는 상속권보다도 가벼운 편이죠.”

재계 한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는 국내 대부분의 그룹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재계 주요 기업집단의 역사에서는 친인척간 상속 분쟁을 겪지 않은 곳이 드뭅니다. 넓게는 친척, 좁게는 형제사이에서도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것이 상속 분쟁이었죠. 

최근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지켜보는 시선이 ‘상속 분쟁’으로 쏠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진그룹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별세 이후 그 상속을 두고 형제간 치열한 소송전이 펼쳐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3세 체제로 접어든 한진그룹의 전운이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는 것 이유죠. 

실제 한진그룹의 상황은 복잡합니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분 상속에 대한 유언장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했고 슬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3남매는 지주사 한진칼에 거의 비슷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죠.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 17.84%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향후 한진그룹 오너가 달라지게 됩니다. 민법에서 지정한 법정상속분은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5.94%를,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각각 3.96%를 받게 되죠. 사실상 이명희 전 이사장이 캐스팅 보트를 잡게 된 것입니다. 

조원태 한진칼 회장.ㅣ사진=한진그룹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ㅣ사진=한진그룹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동일인 변경 신청 과정에 한진그룹의 갈등이 노출된 것도 이런 한진그룹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입니다. 공정위는 조원태 회장을 총수로 지정했지만 향후 상속이 구체화될 경우에는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국내 주요그룹 중 혈연간 상속 갈등을 겪은 곳은 적지 않습니다. 

재계서열 1위인 삼성그룹도 2012년 고(故) 이병철 명예회장의 차명상속 재산을 두고 장남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소송이 벌어졌고 현대차그룹 2000년 역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형제간 갈등이 불거진 ‘형제의 난’을 겪었죠. 

롯데그룹도 2014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한화그룹 역시 1992년 상속을 두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호연 빙그레 회장 형제의 상속 소송을 겪었습니다. 이 외에도 두산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형제간 갈등과 법정공방이 벌어진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진그룹 역시 조양호 회장과 형제들간 오랜 상속 관련 소송을 겪었던 곳이죠. 

이런 국내 기업의 분쟁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이 꼽힙니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이 원인을 기업문화에서 찾습니다. 경영권을 ‘가업(家業)’으로 이해하면서 장자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전근대적 승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동등한 상속권을 가진 다른 형제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로 이어지지요. 

물론 여기에 대한 반박도 적지 않습니다. 경제계에서는 이 배경에 상속세를 꼽습니다. 국내 최대 65%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면서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분할시키는 것보다는 집중하는 것이 더 재원마련과 규모의 경제에서 유리하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 LG, GS나 두산 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국내 30대그룹 대부분은 총수 1인의 단일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의 상속 과정은 향후 재계가 나아갈 상속 과정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줄 전망입니다. 공교롭게도 한진그룹은 최근 몇 년간 국내 기업이 가진 크고 작은 문제를 종합적으로 겪는 중입니다.

오너일가의 독선적 경영과 이른바 ‘갑질’ 횡포를 비롯해 취약해진 경영권의 틈새로 행동주의 펀드와의 갈등도 빚고 있죠.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는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도 해결해야만 합니다. 

재계의 시선이 한진그룹에 쏠리는 것도 향후 기업의 경영승계의 생생한 사례가 되리라는 기대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과연 한진그룹은 차기 오너의 승계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모범이 될 사례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