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화제가 되면서 인기를 끈 드라마 《수리남》을 지난 추석 연휴 때 봤습니다.
요즘 제작하는 드라마들이 12부나 16부작이 보통인데 비해 《수리남》은 6부작이라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여서 쉽게 덤벼들 수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한 덕에 거의 쉬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드라마를 완주한 스스로가 기특해서 만나는 사람 몇몇에게 《수리남》을 봤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 보지는 않고 1시간으로 압축한 편집본을 봤다”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화제가 되는 드라마는 줄거리라도 알고 있어야 대화에 낄 수 있기 때문에 다 보기는 부담스럽고 압축해 편집하고 해설까지 붙인 컨텐츠들을 많이 봤었습니다.
16부작 드라마를 길게는 세 시간부터 짧게는 한 시간으로 줄이거나 두 시간짜리 영화는 30분 안팎으로 줄여 제공하는 컨텐츠가 넘쳐납니다.
영화, 드라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 발매된 걸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셧다운》은 2분 55초입니다.
기존 ‘K팝은 3분대’라는 공식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 같은 추세는 주요 음원차트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음악 플랫폼 〈멜론〉의 지난 주 차트 상위 10곡 중 5곡의 러닝타임이 2분대입니다.
짧게 핵심만 요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면 컨텐츠 길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K팝은 3분대, 드라마는 16부작이라는 '업계 관행'이 깨지면서 짧은 컨텐츠가 트렌드가 됐습니다.
이 같은 원인은 주 소비층의 달라진 소비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틱톡〉이나 〈쇼츠〉 〈릴스〉 등 기존의 파워 플랫폼이 제공하는 숏폼 서비스를 통해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영향이 가장 큽니다.
이 영상의 특징은 짧은 시간에 핵심만 전달하는 것입니다.
숏폼 컨텐츠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지루한 걸 참고 견디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컨텐츠가 쏟아지면서 길이보다는 밀도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전개과정은 압축하고 결론까지 빠르게 연결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평가와 흥행 모두 노리는 제작환경과 방송사의 바뀐 수익구조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결국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덜 지루하고 더 간단하게’가 대세가 됐습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를 짧은 호흡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춰 친절하게 전달하는 컨텐츠에 관심을 갖고 지갑을 여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숏폼에 익숙해지면 깊이 있는 체험을 할 수 없고 소비 중심의 문화로 흘러갈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짧은 것’은 거스를 수 없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