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노트]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 횡포가 아니야
[재계노트]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 횡포가 아니야
  • 승인 2017.12.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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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피부에 와닿는 규제개혁 화급…대·중소 간 대립구조 만들지 말아야
[비즈트리뷴] "갑의 횡포를 엄벌하겠다, 기술탈취 문제가 1호 현안이다. 총론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인데, 각론은 '대기업=횡포'로 보여져 걱정입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텐데…."

최근 사석에서 만난 재계 원로 A씨는 정책의 주체가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기업이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고 있다'는 단정에서 강소 중소기업 육성책이 출발하는 순간, 개혁을 위한 개혁에 빠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중소기업 대표 B씨도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그는 "대기업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피해자라는 갑을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떻게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육성지원하고 만들 것인가를 정책이 최우선으로 받쳐줘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새 정부의 대·중소기업 정책 방향성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정부가 너무 간섭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에 바람직할리 없다는 생각이 컸다. 이들의 사견을 곧이곧대로 재계 전체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대기업의 횡포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비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의 횡포를 바로잡는 것보다 우선돼야 할 것으로 A씨는 "중소기업 성장의 걸림돌은 각종 규제"라는 말을 했다. B씨 역시 "새로운 사업, 새로운 기술에 도전했다가 규제에 막혀 발길을 돌리는 일이 현장에선 비일비재하다"고 거들었다.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이 중소기업들 피부에 와닿지 않는 문제부터가 더 화급한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 강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선결과제는 피부와 와닿는 규제개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빌딩숲 이미지 컷. / 비즈트리뷴DB
 
사실 자유시장경제에서 대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를 횡포라고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물론 정당한 이윤추구에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혁신하며 우리 삶의 질을 바꿀 제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자리가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돌리는 선순환 구조는 바람직하다.

또한 강한 중소기업이 많아지고 이들이 성장해 대기업으로 커나가는 과정은 중산층을 두텁게해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대기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은 옳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대립구도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연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며 자신들의 이윤만 추구하는 집단일까. 재계 관계자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모델만 보더라도 이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한다. 오히려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책은 정부의 정책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와 같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은 셀 수 없이 많다. 특허를 개방하고 조건없이 기술을 이전해주는 사례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식이다. 동반성장이 정부 주도로 추진되면서 대기업에게 당근보다는 채찍을 가하는 분위기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의 상생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기술경쟁력을 확보한 한 중소기업(충남 천안) 대표 C씨는 "(삼성은) 상생협력이라는 말뿐만 아니라 실무진까지도 상생이라는 코드가 아예 몸에 벤 것 같다"며 "삼성과의 협업으로 일본업체에 의존하던 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해 오늘의 성과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A씨와 B씨는 이날 정부의 규제개혁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방향성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B씨는 "혁신성장이 창조경제와 뭐가 다른 것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겠다"면서 "회사가 커져도 굳이 대기업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상 기류에 연구개발 세액공제 축소 등 대기업이 되면 감내해야할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더 많은 규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한데 무엇하러 대기업으로 성장하겠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에 참석해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제54회 무역의날 기념식 축사로도 중소기업의 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방향설정은 백번 옳다.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경제발전도,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대기업의 횡포를 전체의 횡포로 보는 일반화의 오류는 경계할 부분이다. 중소기업이 굳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는 이유 역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경영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개혁하는 것. 횡포라는 코드에 매몰된 과도한 간섭보다 발빠른 규제개혁으로 대·중소기업의 자율경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있게 들린다.

[ 이강혁 기자 / 부국장 ikh@biztribun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