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세상의 많은 '인비저블'을 위해
[포토에세이] 세상의 많은 '인비저블'을 위해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2.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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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회 가 보신 적 있으세요? 피아니스트 옆에 있는듯 없는듯 앉아 있는 사람을 볼 경우가 있습니다.
그림처럼 조용히 있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피아니스트만큼 바빠집니다.바로 ‘페이지터너’입니다. 말그대로 악보의 페이지를 넘겨주는 사람입니다. ​

두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대신해 악보를 넘겨주는 역할입니다.
페이지를 너무 늦게 혹은 빨리 넘기면 연주의 흐름이 끊어지고 자칫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페이지터너는 연주곡을 잘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움직임도 빠르고 정확해야 합니다.
왼손으로 악보의 오른쪽 윗모서리를 잡고 재빨리 넘기는데 이 때 소리가 크면 안 됩니다. 

페이지터너는 잘해야 본전입니다. 보통은 악보의 한 마디 정도 남기고 넘기는데 핵심은 피아니스트와의 호흡입니다.
음악적 지식이 있고 악보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도 없습니다. ​

언론인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자신의 책 《인비저블》에서 음향엔지니어, 공항의 신호체계 설계사를 비슷한 예로 듭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일을 잘할 땐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이 사람들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일이 잘못돼 평범한 일상이 멈췄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인비저블’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무대의 조명 엔지니어도 있습니다.
이들은 항상 조명 뒤에 존재합니다. 이 사람이 조명 앞에 나오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일이 전문화, 파편화되면 ‘인비저블’ 자신도 자기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차대전 때 학살을 자행했던 사람들, 가령 자기가 개발한 가스를 사람 죽이는 데 사용할 줄 몰랐던 과학자, 수용자들을 운반했던 열차 기관사, 서류를 분류하고 문서작업을 했던 사무직 관리자 모두 자기 맡은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입니다.
단지 그 일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을 멈춘 사람들이죠. 작가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정의했습니다. ​

이와 반대로 ‘인비저블’은 ‘선의 평범성’입니다.
이 사람들은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자기 일에 완벽을 추구합니다.
일반 대중 대신 동료로부터 인정받고 이를 자기 일의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

많은 산업분야과 사회 곳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인비저블’이 있습니다.
수퍼스타와 천재가 난무하는 시대에 무명으로 남으면서도 일과 삶을 즐깁니다.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능력’까지 무시되는 세상은 안 됩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성실하게 수행하는 세상의 많은 ‘인비저블’ 덕에 그나마 사회가 돌아가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