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소를 먹는 방법
[생각다이어리] 소를 먹는 방법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2.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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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소고기뭇국을 끓였는데 최근 먹어본 국 중 최고였습니다.
고기를 기름에 볶은 뒤 끓였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그러면 기름져서 싫고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국물요리에는 아무래도 지방함량이 적고 육수맛이 깨끗한 양지나 설도 목심 같은 부위가 많이 사용됩니다. ​

한국은 전세계에서 소고기를 가장 세밀하게 나눠 먹는 나라입니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도 한국인은 소의 120개 부위를 먹는다고 놀란 적 있습니다.
35개 부위를 먹는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4배, 51개 부위를 먹는 아프리카 보디족보다 2배가 넘게 다양하게 먹습니다.
다양합니다. 국어사전에는 소의 내장과 살코기에 관련된 단어가 136개가 올라 있을 정도입니다. ​

일제 강점기 시절, 소중하게 우리 요리를 지켜낸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 〈쇠머리편육〉편에는 ‘쇠머리는 열두 가지 맛이 있다.
혀는 연하고 구수해 맛이 가장 좋다’고 했고 ‘설렁탕은 가죽을 제외한 온갖 부위를 다 넣고 끓여 먹는 일종의 소고기 잡탕이지만 소머리가 주연’이라고 썼습니다. 

1980년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설렁탕집 앞에 소머리를 진열한 모습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이후 소머리 사용에 비교적 관대했던 경기도 곤지암 지역에 소머리국밥을 파는 식당이 성업하게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원을 따지면 설렁탕과 소머리국밥은 같은 음식입니다.​

양은 소의 4개 위 중 첫번째 위입니다. 맨 윗부분인 양깃머리는 양 부위 중에서 가장 두툼하고 단단하지만 씹는 맛이 좋아 최고의 내장 부위로 꼽힙니다.
대창의 3배, 곱창보다는 2배 이상 가격이 나갈 정도로 대접받습니다.지방이 전혀 없는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라 건강에도 좋습니다.
정육점 아들이 양깃머리를 많이 먹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

1990년대 이후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비육우가 한우 사육의 중심이 되었고 풀 대신 수입 사료를 먹이게 됩니다.
사료는 반추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따라 한우의 양과 양깃머리가 퇴화해 얇아졌습니다.
게다가 사료를 먹은 소의 양은 냄새가 심합니다. 유명한 양.대창 식당에서 뉴질랜드산 소의 양을 사용하는 것도 여전히 풀을 먹여 키우기 때문입니다. ​

소고기뭇국을 오랜만에 먹은 김에 생각나는 대로 나열했는데 부위별로 대표적인 특징만 나열해도 논문을 써야 할 정도로 방대해질 것 같아 오늘은 유머 하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목장이 망하게 되어 새로운 주인이 왔습니다. 새 주인은 협상의 달인이었는데 소들에게 매우 정중하고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습니다.
“얘들아, 딱 한 마디만 할게. 내가 고기를 내다 팔지 우유를 팔 것인지는 모두 너희들한테 달려 있어. 내일부터 두고 볼 테니 알아서들 해라!” 다음날부터 목장에선 최고급 우유가 콸콸 쏟아졌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