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치킨공화국
[생각다이어리] 치킨공화국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1.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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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닭은 비싼 음식이었습니다.
사위를 위해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린 상 위에 올라가는 장모님 음식들 가운데 압권 역시 씨암탉입니다.그만큼 귀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 사료 생산과 식용유 보급이 늘면서 지금의 치킨 형태로 닭고기 소비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요즘 우리가 말하는 ‘치킨’은 닭고기가 아닙니다.
닭이 주재료이긴 하지만 닭고기라고 부를 수 없는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치킨점과 육계산업 식용유 같은 식재료의 변천사를 거치면서 ‘치맥’ 열풍과 배달시스템에 힘입어 ‘KFC(코리안 프라이드 치킨)’라는 국민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

사람들은 치킨에서 튀김옷의 바삭함과 ‘맵짠’ 양념을 따질 뿐 닭고기 자체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관심합니다.
우리는 닭을 먹는 걸까요, 닭의 튀김옷을 먹는 걸까요?
사실은 콩과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닭에 옥수수전분으로 튀김옷을 입혀 콩기름에 튀겨낸 ‘콩닭’이나 ‘콘닭’을 먹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전세계 인구가 80억인데 사육되는 닭은 230억 마리입니다.자연 상태에서 닭은 10년에서 13년 정도 삽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닭은 부화한지 35일만에 도계하는 공장시스템으로 닭은 이미 제조업 ‘공산품’이 돼버렸습니다. ​

소나 돼지처럼 종교적 금기도 없는 데다 사육이 쉽고 생장이 빨라서 닭은 육류 생산과 소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만 해도 매년 6억 마리를 먹는다니 5천만 인구가 매달 한 마리를 먹는 셈인데 연령별 차이를 고려하면 청장년층은 매주 한 마리씩 먹는다고 보면 됩니다.  ​

우리나라는 1977년 최초의 프랜차이즈 림스치킨이 프라이드치킨을 선보였고 1984년 미국 KFC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치킨전쟁이 시작됐습니다.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유별납니다. 2020년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477개.이들 브랜드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가맹점 수는 25,400개.
시장규모는 7조5천 억에 이릅니다. 2020년 조사한 자료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히 치킨공화국으로 부를 만합니다. ​

치킨과 얽힌 말도 넘쳐납니다. ‘일인일닭’ ‘치느님’ ‘겉바속촉’ 같은 말은 일반명사처럼 쓰인 지 오래됐습니다.
‘치맥’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됐습니다.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치킨은 살 안 쪄요. 내가 살쪄요’ 같은 명언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

한 유명 칼럼니스트가 얼마 전 ‘한국 치킨은 작고 맛없다’고 평가해 논란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같이 교회 다니는 형제네 집에서 남자들 몇이 모여 미리 염지한 닭을 숯불에 구워 먹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