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이어리] 궁합
[생각다이어리] 궁합
  • 신형범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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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기가 찬 남자와 여자가 배우자로서 잘 맞는지 따져보는 걸 궁합이라고 합니다.
기원은 기원전 1세기 한나라 때로 올라갑니다.
당시 한나라의 골칫거리는 북방의 흉노족이었습니다.
수시로 국경을 넘어와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흉노를 압도할 정도의 군사력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

흉노족을 어르기도 하고 때로는 달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한나라가 저자세로 나오자 기고만장해진 흉노족장은 한나라 공주와 혼인을 요구합니다.
귀한 공주님을 오랑캐에게 시집을 보내다니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면 후환이 두렵고 그래서 점잖은 핑계가 필요해서 만든 게 궁합입니다. ​

궁합은 당나라에 와서야 체계를 갖춥니다. 당나라는 ‘세계제국’이었습니다.
많은 외국인 유학생과 상인들이 수도 장안을 들락거렸습니다.
신라 일본 인도 심지어 아랍에서도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황실과 귀족 가문에 청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

당시 분위기가 개방적이라고 해도 외국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 태종은 ‘궁도합혼법’을 만들어 외국인의 청혼을 거절하는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이 궁도합혼법을 궁합의 기원으로 보는 게 정설입니다. 그러니 궁합은 원래 혼인을 거절할 명분으로 만들어진 게 맞습니다. 

우리나라엔 궁합이 언제 들어왔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궁합’이라는 말이 등장한 건 조선후기에 이르러서입니다.
혼인이 결정되면 신랑 집에서 신랑의 사주를 신부집에 전달합니다. ‘납채’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궁합을 따져 보았습니다. ​

정조가 세자빈을 고를 때 사주와 궁합을 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국가공인 점술가인 김해담이 봤는데 ‘몹시 귀하고 길하다. 장수와 부귀를 모두 갖춰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는 점괘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순원왕후 민씨는 69세까지 살았고 자녀복은 없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요절했습니다.
후하게 봐서 69세를 장수로 친다면 그걸 제외하고는 모두 틀렸습니다. ​

고종도 세자빈 간택 때 사주궁합을 봤습니다. 김씨(순명효황후)의 사주를 보더니 ‘복되고 귀하니 최상’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장수하며 아들도 많을 것’이라고 했지만 김씨는 33세로 요절했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국가 최고의 점술가 안경린이 예언했지만 전부 틀렸습니다. 이쯤 되면 사주궁합에 대한 근거가 의심스러워집니다.
MBTI로 서로 성격을 따져 맞춰보는 게 차라리 더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